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P사모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여러분의 목사님과 사모님들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만난 분이신데, 그 분의 소녀같은 순수함 뒤에는 어른을 공경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스함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인정이 숨어 있으셨다.
외국에 처음 나와서 힘들 적마다 그 분을 생각하며 내 자신을 추스린 적도 많았었다. 누군가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시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북돋곤 했었다. 나 역시도 그 분의 사랑을 톡톡히 받은 사람중의 하나이다. 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그 분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주신 울스커트, 나중에 나보다 더 잘맞는 후배에게 줬지만 그 예쁜 사모님의 그 따스한 사랑의 마음은 늘 내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 이전에 보았던 대부분의 목사님 사모님들은 항상 대접을 받는 입장이셨는데, 이 분은 늘 베풀기를 좋아하시는 목사님과 천생연분이신지 주위에 늘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셨다. 이래서 ‘부창부수’란 말이 생겨났나 보다.
일종의 암묵적인 원칙—'목사님 사모님들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들'이라는--을 깨뜨린 파격, 사실 그것이 내게는 사모님의 선물 그 자체보다 더 신선하고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당신은 늘 똑같은 한복 한벌로 추우나 더우나 매 주일을 고수하시면서 매 주마다 가장 나이드신 어른부터 시작해서 한분 한분 ‘저분께는 뭐가 가장 필요할까?’ 고심하시다가 그분에게 제일 필요할 것같은 물건을 사서 선물하시느라 용돈이 늘 빠듯하시다는 사모님이셨다. 그럴 때 사모님은 어른이시지만 사춘기 소녀처럼 얼마나 귀여우셨는지 모른다. 우리 교회의 나이드신 할머니들이 사모님이 계셨던 그 몇 해의 겨울을 아주 따뜻하게 보내셨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군 되시는 L목사님 역시 정말 멋진 분이셨다. 언젠가 우연히 교회 앞 마당에서 목사님께서 허리를 구부리시고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청년 한 명이 다가가 무얼 찾고 계시느냐고 여쭙자, 깨진 유리조각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달려나오다가 모르고 밟으면 발 다치지 않겠느냐고 하시면서 유리 줍는 일을 계속 하셨다. 곧 주일학교 아이들이 끝마칠 시간이었다. 그 분의 지위--군목으로서는 대령이 제일 높은 지위라고 한다.--로 봐서 다만 명령 한마디로도 충분히 아랫사람들에게 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먼저 본 목사님께서 손수 그 일을 하신 것이었다. 이 때만큼 목사님이 존경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다. 대구에 계신 전임지의 신도들이 이 목사님께 붙이셨다는 ‘걸어다니는 성자’라는 별명이 결코 사실무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분은 한번도 강단에 서서 자신을 존경해달라거나 혹은 자신이 제일 높은 계급의 목사이니까 하위계급에 있는 신자들 혹은 일반 신자들이 목사님께 대접을 잘해야 한다는 우회적인 요청이나 은근한 협박도 한마디 없었다. 그렇지만 그분을 존경하는 사람이 참 많았던 것은 그분의 신앙과 인품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존경’같은 감정은 누군가에게 강요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존경은 자고로 그 받을 사람이 그러한 그릇이라면 제발 존경하지 말래도 사람들은 그러한 분을 저절로 존경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존경은 구걸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협박과 위협을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협박과 위협으로 일시적인 겉치레에 불과한 존경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존경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존경하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와야 제 맛이 아닐까 싶다. 윗사람이 진심으로 아랫사람을 아끼고 위할 때 윗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사랑이 흘러 내릴 것이고 그러할 때에 정말 아랫사람들에게서 그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L목사님과 P사모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그 두분의 맑고 따뜻한 사랑과 크리스천의 향기로 인해 더욱 많은 기독신자들이 생겨나고 또한 그 분들처럼 남들에게 풍성한 사랑을 베풀고 나눠 주면서 소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멋진 기독신자들이 더욱 더 많아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