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른 아침, 아이와 함께 한글학교를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이 경사져서 드문드문 계단식으로 높아져가는 길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중간에 가게들이 즐비한 곳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하나 있는데 키크고 예쁜 여자들이 두세명 우리 앞을 지나 그 골목길로 가고 있었다.
“어, 아무개같이 생겼네.”
그중 제일 가에 서서 걸어가는 아가씨를 보고 우리 애가 하는 소리였다.
“애, 앞을 봐! 너 넘어진다, 그러다.”
꽈당.
내가 앞을 보라고 주의를 주었건만, 우리 애는 그 아가씨를 따라 돌린 고개를 여전히 돌리지 않고 있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자신이 잘못해서 넘어진 거라 차마 울지는 않았지만 넘어진 무릎이 제법 아픈지 한동안 아이는 제대로 걷질 못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여자한테 한눈 팔면 안된다고 했지?”
여자를 보기를 돌같이 해야될 나이에 다섯살짜리 이 녀석이 제 엄마 말씀을 안듣다가 사고를 만났으니 다친 건 둘째 치고 일단 엄마 말 듣지않은 것부터가 괘씸해진다. 제딴에는 아무개 누나처럼 생긴 여자가 지나가니까 혹시나 긴가민가싶어 끝까지 눈으로 ㅉㅗㅈ았던 건데 하필이면 도중에 둘부리가 있었으니…
그런데 또 나는 나도 같은 여자이면서 내 아들에게, 여자에게 한눈 팔면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우습다. 이래서 ‘여자들의 적은 여자’란 말이 생긴 걸까?
학교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우우 몰려있는 입구에서 고개를 여자애들이 있는 반대쪽으로 팍 돌리고 들어가는 녀석이 그날만큼은 눈에 뭐가 씌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학년 누나들이 그 모습이 귀여워서 제 이름을 불러도 부끄러워서 그런지 그때만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복도로 뛰어들어 가버린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도 엄마품에 한번 꼬옥 안기고 가던 녀석이 이제는 조금 컸다고 아이들이 많이 나타나는 전에 골목길에서 엄마랑 아들간의 아침의식-아이를 위한 짧은 기도와 포옹-을 빨리 하자고 재촉한다. 그리고는 짧은 포옹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 빠이” 하면서 가방도 제가 메고 가고 하여간에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학교안으로 들어갈 생각만 한다. 그럴 때 거의 학교 근처까지 무거운 가방을 들어다준 엄마는 조금 섭해지려고 한다.
그래서 다정다감한 걸 좋아하는 엄마들은 딸을 더 좋아하나 보다. 언젠가 아들만 둘 있던 어떤 분이 나더러, 아들은 크면 꼭 사촌같다, 면서 꼭 예쁜 딸을 낳아 키우라고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아이를 가졌을 때 정기검진으로 끝까지 나를 돌봐준 영국인 산파 아주머니도 그러셨다. 딸들은 영원히 딸인데, 아들은 결혼하기 전까지만 아들이라고. 딸들은 커가면서 엄마랑 친구처럼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이런저런 걸 서로 많이 공유한다는데, 아들들은 여자친구가 생기고 결혼하고 나면 그 새로운 여자에 의해서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져서 그러는 모양이다.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겨도 엄마에게 이런저런 얘기 다 하겠노라고 지금은 멋도 모르고 호언장담(?)하는 우리 아들이 과연 그럴런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아는 누나 닮은 여자에게 한눈 팔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무릎이 제법 아팠던 아들이 이 다음에 커서는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참하고 슬기로운 여자를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길 미리부터 빌어본다. 너무 빨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