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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말은 쉬울 것 같지만 실지로는 그 자체가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왜냐면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으로부터 받은 기억하고 싶지않은 마음의 상처 혹은 아픈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려야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여섯살 아들녀석과 나를 언니, 언니하고 잘 따르는 동생의 도움으로 그 어려운 용서를 하기로 결심하고, 또 큰 맘을 먹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사실 용서를 한 이는 내가 아니라 내안에 계신 예수님이라는 걸 그 친구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여섯살짜리 아들 녀석은 밤마다 잠들기 전에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문구를 꼭 세번씩을 반복, 반복하고서야 다음 구절로 넘어가곤 했다.
내가 옆에서, 그 다음은 ‘우리를 시험에 들지말게 하옵시고’잖아! 하고 말을 해도 제 고집대로 꼭꼭 세번씩을 하고서야 직성이 풀리고는 했다.
처음 몇번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그것도 자꾸 듣다보니 내 마음에 조금씩 찔리는 게 생각나곤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있는지 내 자신을 점차 돌아보게 되었다.
베드로가 주님께 다른 사람을 몇번이나 용서해야 되느냐고, 일곱번 하면 다 되는 것이냐고 의기양양하게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일흔번씩 일곱번을 용서하라고 대답하셨다.
일흔번씩 일곱번은 둘째치고 나는 나를 아주 속상하게 한 이에게 완전히 칼로 무 베듯이 냉정하기 짝없는 일본인들의 습성을 본떠서 이런저런 말도 없이 아예 모르는 체 하기로 결정하고 어쩌다 잠시 마주치게 되는 것조차 꺼리곤 했다.
언니, 그래도 친구였잖아.
다시 잘 해줘, 부탁하다가 내가 싫다고 하자, 그럼 언니도 똑같아! 하는 아우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침,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려고 할 때에 남을 칼로 자르는 내 판단이 나오고 거기서 바로 인간의 교만이 나오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너무 똑똑하고 잘나기보다는 차라리 좀 어리숙한 사람이 되는 편이 훨씬 나은 거라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도 동시에 내 맘속에 떠올랐다.
그래, 나도 죄인이었는데, 주님께서 내 대신 목숨 바쳐 피를 흘려주셨는데…
용서하자. 그래, 용서한다. 용서를 하더라도 내가 왜 화가 났었는지 이유는 말해주어야겠지.
이 아우는 마치 한때 친구였던 두사람을 화해시키려는 역사적 사명이라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처럼 오늘따라 아주 별스럽게 전에 없던 애교까지 다 동원해서 수선을 피운다.
‘주님, 저로서는 못하지만 주님 의지해서 용서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세요.’ 속으로 깊이 기도를 하고 평화의 사절로 밤깊은 시간에 우리 집에 커피를 한잔 마시러 온 아우에게 전화로 그 친구를 부르라고 했다.
내가 이래저래해서 네게 무척 화가 나서 다시는 안볼려고 했었다니까 그 친구는 그제서야 기억을 더듬으며,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다.
용서하기 힘들 것 같았던 사람을 마음을 열고 용서하고나니 오히려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 친구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긴 팔을 벌려 나를 꼬옥 껴안으며, 언니 잘했어, 사랑해! 하던 아우를 통해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나를 향한 그분의 커다란 기쁨을 그렇게 표현해내시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