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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이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반가운 뉴스를 접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하나가 있었다.
내친구, 좌종화.
나는 잘 몰랐던 영국의 여류소설가 도리스 레싱을 좋아하여 그녀의 소설 [황금노트북]으로 석사논문을 쓰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그녀의 거의 전 작품을 읽고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쓴 친구이다.
도서관에서 '도리스 레싱'의 책만 보아도 종화의 얼굴이 떠오른다.
약간은 중성스런 그녀의 이름때문에 신혼초에 혹시 숨겨둔 남자친구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후배로부터 사게한 이 친구.
그 후배는 내 친한 여자친구라고 해도 남자이름이 아니냐며 영 믿어줄 의도를 보이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갔고 언젠가 내가 책을 내게되면 꼭 종화에게 '언니 어쩌고저쩌고'하는 서문을 쓰게해서 그 오해를 풀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해명을 못하고 있다.
부산대학 구도서관앞 아름드리 푸른 나무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그곳에 간간이 놓여진 벤취에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 한잔과 함께 가을아침을 열곤했던 추억이 아물거린다.
서로 매일 얼굴 볼 수 있고 말이 없어도 간간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데 지탱할 힘이 되어주곤 했던 것이 그녀와 나사이였다.
“언니,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 내곁을 떠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마음을 굳히고 처음으로 나라를 떠날 때 종화가 내게 하던 말이었다.
그 말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할 수만 있다면 내 결심을 뒤로 하고 그냥 주저앉고도 싶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행여 만지면 간지럼에 질색이던 내가, 공부하고 있는 내 뒤로 조용히 와서 마치 귀여운 강아지 목을 살살 어루만지듯이 내 목을 만지는 종화에게는 그런 간지럼까지도 꾹 참아주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해지는 모양이다.
종화는 종종 내가 성격이 자기 엄마를 많이 닮았다며 똑같은 말을 엄마가 하면 듣고싶지않아 투정부리다가도 언니가 하면 듣게된다고 했다.
그녀의 야무지고 생활력 강한, 멋쟁이 엄마를 닮았다는 건 하나의 좋은 칭찬이었다.
멋부리는 것만큼은 영 젬병인 내가 그녀의 멋진 엄마를 다 따라갈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오래전 런던에서는 한두번인가 종화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린 여성들을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한번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내가 정말 사랑하던 친구 종화가 자주 사용하는 참 특별한 향!
그 향 하나에도 나는 마치 종화를 본 듯이 마음이 울렁거려진다.
요즘은 예년과 달리 눈부시게 푸르른 가을날이 아주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맑고 푸른 가을날 하루쯤 시간을 내어 편지를 써야겠다.
내 사랑하는 종화는 아직도 여전할는지?
아침 햇살을 따라 비행기의 꼬리줄들이 하얗게 하늘에 길게 줄을 남기고 떠날 때 아들녀석은 자기도 한국에 가고싶다고 한다.
천방지축으로 까부는 조그만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오래 타는 건 엄마에게 너무 힘들어서 아직은 안돼!, 라고 대답했지만 나도 모르게 언젠가 시간과 여유를 내어 그리운 사람들을 보러가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가서 레싱의 책을 한권 빌려 읽어야겠다, 내 친구 종화를 떠올리면서.
도리스 레싱과 좌종화, 이 가을아침에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든 두 여성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