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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신(영국, Glasgow 거주)
지난 주엔 요리로 치자면 즉석요리로 글을 썼었다. 제목은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는데 여지껏 ‘유로저널’에 글을 쓴 이래로 정말 처음으로 독자님, 아니 이 신문의 발행인으로부터 바로 이메일 답장이 와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내 어줍잖은 글이 그분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몰라도 이곳 글라스고에 필요한 신문을 좀 보내주시겠다고 하니 정말 황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전에 내 나이가 한창 꽃다운, 젊었을 적에, 신문에 글이 나오면 나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 있는 생기 팔팔한(?) 젊은이들로부터 거의 연서 수준에 가까운-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연서 수준의 편지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니!-글도 간간이 받았었는데, 나이가 마흔이 넘다보니 또 내 글에서 그런 나이먹은 사람의 냄새가 나는 모양인지 그런 일이 아예 없어진 지 오래이다. 요새는 하도 신기술이 발달해서인지 그에 따른 사람들 눈치도 거의 100단에 가까운 모양이다.
하기는 내가 대학시절에 글을 썼을 적에 내 단짝 친구가 늘 하던 말이 있었다.
“네 글에서는 생활인의 냄새가 난다.”
한참 이성적이고 감성적이어야 할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전당에 있는 제법 고상함직한 사람의 냄새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는 걸 당시의 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내게 없는 그 어떤 근사한 향기를 만들어낸다고 글로써 가장할 수도 없고. 어쩌면 눈치 빠른 그 친구가 매번 새학기마다 필요한 교재들을 사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내가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글을 써서, 한마디로 글품을 팔아서 사는 것을 그런 식으로 약간 빗대어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눈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어보이는 펜의 힘이 사람을 파리 목숨 다루듯이 살상하는 무기로도 쓰여지는 무서운 총칼보다도 더 큰 힘이 있음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언론의 압제가 있을 때마다 지식인들이 혹은 언론인들이 때로는 총칼의 위협이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있다가도 결국에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달라고 들고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다보니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내가 늘 소지해다니는 품목이 하나 있으니 바로 필통이다. 작년쯤 거의 15년이상을 나와 함께 동고동락해온, 내 친구 혜진이가 선물해준 예쁜 필통을 그동안 몇번이나 꿰매었건만 수명이 다해서 버려야 했을 때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받아온 질긴 필통을 내가 쓱싹 차지해버렸다.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애들이 필기구만 좋은 것 쓴다고 놀려대는 항간의 얘깃거리도 다 아는데, 이상하게 필통과 노트, 이 두가지는 내게서 쉽사리 떠나가질 않는다. 펜의 힘을 살살 얘기하다보니 나도 꽤 상당한(!!) 힘을 갖고 있는 것같다. 왜냐하면 내 필통속에는 그동안 길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주운 정말 많은 펜-하긴 펜은 별로 없네! 옴메, 기죽어!-과 볼펜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실은 힘없고 나약한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힘 혹은 재능을 주신 데 대해 감사한다. 약한 나를 약하다고 멸시치 않으시고 강함으로 덧입혀 주시고, 가난한 나를 가난하다고 멸시치 않으시고 주님의 부요함으로 충만케 채워주시고…
생각해보면 펜이든 칼이든 어느 누구의 손에 들려있느냐에 따라서 그걸 통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고 혹은 그 자체가 무서운 도구로도 쓰여질 수 있다. 나는 거의 감감무소식이지만 인터넷의 무분별한 댓글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고있다. 펜을 정말 펜답게 쓰지못한 사람들로 인해 그런 일이 생겼났다고 본다. 내 손에 들린 펜으로 나는 세상을 이롭게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펜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