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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신 (영국, Glasgow거주)
아는 언니 한분이 사는 집의 뒷마당이 그 동네의 공공시설인 공원 담장과 맞붙어있는데 날마다 일정한 시간대에 나타나는 여우들이 있다. 인심이 후한 이 언니를 그 꾀많은 여우가 어찌 알고서 먹을 것 구하기 힘든 날에는 언니 집 부엌 창문이 보이는 곳에 턱하니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단다. 아닌게 아니라 이 언니는 닭가슴살이나 쇠고기, 돼지고기 두둑한 살점들을 던져준다. 처음에 한마리만 조심조심 오던 게 보아하니 그집 안주인의 음식 인심도 후한데다 자신을 전혀 해치지않을 것같은 착한 마음씨에 안심이 되었던지 나중에는 여자친구(아님 아내?)까지 데리고 오더란다.
남편의 직업상 종종 집을 비우기도 하는데 언니가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이 여우들이 어찌 알았는지 어김없이 예전처럼 다시 나타나곤 하니 다른 반겨줄 식구가 없는 언니에게는 그 여우들이 언니의 귀가를 반겨주는 식솔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여우들이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여자들을 분류할 때 보통 애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여우’나 ‘곰’으로 지칭하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또한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혹은 무슨 일을 할 때, “난, 그런 거 못해!” 하며 가만 앉아서 대접받으려는 축을 ‘공주’과로 분류하고 왠만한 머슴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팔뚝 딱 걷어 부치고 일을 전혀 겁내거나 무서워하지않고 척척 잘해내는 축을 ‘무수리’ 혹은 ‘향단이’과로 부른다.
보통 보면 여우와 공주과에 속하는 여자들이 같은 여자들에게는 뒤에서 욕을 잔뜩 얻어먹지만 눈앞의 미모와 애교에 약한 남자들에게는 분에 넘치는 상당한 대접을 받는 걸 보면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하긴 연약한 여자들을 보호하고싶은 본능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싶은 남성들의 피 속에 숨어있다면 그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성의 미모와 애교가 잘 맞아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곰곰 생각해보니 아들 하나에 딸만 셋있는 집에서 태어난 나는 희귀성이 없어서인지 공주처럼 자라지를 못했는데, 후천적으로라도 여우기질을 좀 연습-하긴 여우기질이 연습한다고 될 일이라면 이 세상에 여우 아닌 여자들이 어디 있겠나?-했으면 좋았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공주나 여우는 아무나 되고 싶다고해서 되는 게 아닌 것같다.
오래전 밴쿠버의 여행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여행사의 전직원들이 가족들까지 동반하여 인근의 섬으로 야유회를 갔었다. 거기서 남자직원들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고기는 한마리도 못잡고 대신에 커다란 바다게들을 많이 잡아와서 즉석에서 게를 넣은 해물탕을 끓여먹자고 했다. 그때 대부분 여행가이드들의 부인들이 살아있는 게의 집게발이 무서웠는지 아니면 원래 공주과라 받아만 먹는 처지여서 정말 요리를 혹은 일을 못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하나같이 나 몰라라 하고 먼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미혼은 나를 포함 딱 셋이었는데, 한명은 이십대 초반이라 어리다치고 다른 한 언니는 나랑 삼십 넘기는 같은 처지였는데 아무도 나서질않는 바람에 결국은 그때까지 한번도 게손질을 안해본 내가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팔 확 걷어부치고 게손질을 다 했었다. 흑흑, 나도 우아한 공주가 되고 싶었는데 상황이 영 안따라 주도다. 어쩌면 해야될 일을 미루고는 맘이 영 편치않은 나의 ‘향단이’과 근성이 문제인가?
미운 일곱살-영국 나이로는 여섯인데 자기는 한국 나이로 일곱살이라고 우겨대니까-이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미운 짓을 해서 속을 썩이는 아들녀석이 ‘곰’과인 엄마를 닮지않고 곰살맞은 제 아빠를 닮아서인지 엄마를 단 한방에 살살 녹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다름아닌, “엄마, 사랑해!”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설 때 아이가 다시금 문을 열고 나에게 말을 한다. “엄마, 사랑해!” 그러면 나는 답례로 “엄마도 아들 사랑해!” 라고 하면서 ‘다음에는 내가 먼저 말해야지’ 아무리 다짐을 해도 언제나 나는 타이밍에 있어서 아들보다 한 박자가 늦어버린다. 요즘은 애가 좀 컸는지 어조가 바뀌었다. “엄마, 사랑합니다.” 아아, 여우들은 못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