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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엽기적인 그녀 (3월1주)

by 유로저널 posted Mar 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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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아주 엽기적인 그녀는 ‘잉태’부터가 정말 엽기적이었다.  이렇게 요상하게 나오니까 제법 엉큼한 남자들은 어쩌면 ‘혼외정사’부터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서라, 쯧쯧.
아들 둘을 낳고나서 특히나 둘째아들이 어찌나 별난지 너무 힘들었던 그녀의 엄마는 다시는 아이를 낳지않겠다고 선언을 했고 그래서 자상한 남편은 자신이 피임수술을 했다.  
그러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큰 아이가 열두살, 작은 아이가 아홉살이던 해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부인에게 아이가 덜컥 들어섰다.  웬만한 남자같으면 아내를 의심의 눈초리로 훑어보며 좋게 말할 때 이실직고하라고 닥달했음직도 하건만, 워낙 호인이신 그분은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먼저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담당의사가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 이런 일은 천명중 한명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수술부위가 다시 복원이 되셨군요.  그 의사선생님은 다른 동료 의사들을 대표해서 정말 난처할만도 했겠다.  
나는 이렇게 천명중 한명 있을까 말까 한 엽기적인 아가씨를 만났다.  그러나 나를 더 놀랍게 한 사실은 악기를 포함하여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들 부잣집에서 곱게만 자라나서 남이 해준 음식 받아먹을줄만 알지 제 손으로 뭐 하나 제대로 해먹을 수 있겠나 하는 나의 편견을 팍 깨뜨려버린 것이다.  그녀가 해준 부대찌게를 한번 먹어본 남자후배들이 틈난 나면, 누나 우리가 음식 재료는 다 사 갈테니까 요리만 좀 해주세요, 하고 졸라대는 통에 일주일에 세번꼴로 음식을 푸짐하게 하곤 한단다.  이 요리솜씨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절대 길거리표 음식을 먹이지않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먹이셨던 그녀의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아주 귀한 유산중 하나였다.  
또 하나 그녀의 영국 유학을 오게된 경위가 나로 하여금 그녀를 새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중 1이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그녀가 14살때 예원에서 첼로를 하던 이 친구가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바이올린을 하는 친구를 따라 아무 생각도 없이 자기네 학교 근처의 어느 문화원(당시는 거기가 영국문화원인줄도 몰랐다고)에 가서 평소 엄마 친구들 앞에서 장기자랑하듯이 ‘영국 왕립 음악원’의 학장앞에서, 나 다섯곡을 할 수 있는데 당신이 골라봐요, 뭐 듣고 싶으세요?  바하의 뭐(곡 이름), 또 아무개(물론 음악가의 이름이겠죠)의 뭐…, 아주 유창하지는 않지만 짤막짤막 영어로 말을 했단다.  그랬더니 그분이-그때는 그분이 유명 음악대학 학장님인줄도 몰랐던, 제 말마따나 무식해서 용감했던 그녀!-네가 제일 자신있게 칠 수 있는 곡을 연주해보라고 해서 바로 그날로 실기시험이 끝났던 날이라서 완전히 외웠던 곡을 첼로로 연주를 했단다.  자신이 연주를 끝내자 그분의 얼굴에 떠오르던 흡족해하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단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집으로 영국에서 왠 우편물들이 엄청 많이 오더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워하는 가족들에게 그때 이미 미국유학을 끝내고 온 큰 오빠의 설명에 의하자면,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혜정이에게 학비는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지급받는 장학생으로 오라는 합격통지서인데, 아직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연령이 아니므로 사립중등학교를 추천해주겠노라는 친절한 편지까지 곁들어 있었단다.  그래서 혜정이는 얼떨결에 유학을 오게 되었고 IMF가 터졌던 그 난시에는 대학에서 장학금으로 생활비까지 대주어서 부모님께 전혀 부담주지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단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미리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릴만한 자격을 지닌 그녀가 누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열네살에 영어를 할 수 있었던 건 엄마가 노느니 장독 깬다고 서울에 있는 미군부대안의 영어반에 넣어 주어서 뭐든 하면 열심히 하고드는 그녀의 성격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란다.
나를 가장 배꼽잡게 만든 얘기는 뭐니뭐니해도 수십년동안 담배를 피워오신 그녀의 아버지께서 하루아침에 손 탁 털고 담배를 끊으신 사건이었다.  들은 대로 여기에 소개해본다.
혜정: 아빠, 담배 끊어야지.(참 누가 어른이고 누가 자식인지 모를 어조이다.)
아빠: 그래, 끊어야지, 그런데 그게 말이야…(어쩌고 저쩌고 변명이 이어졌겠죠.)
혜정: 그래?  그럼 나도 아빠랑 맞담배 피울거야! (이때 혜정이 나이 방년 21세였다. 한다면 하는 고명딸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시는 그 아빠, 정말 현명한 선택을 하신 것이었다.)
혜정아, 사랑해.  이런 멋진 아가씨, 데려갈 왕자님은 어디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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