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우연히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사진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진
속의
인물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
기타를
메고
노래를
하고
있었고,
그는
바로 Harry
George였다.
그와의
만남은
2005년도
가을,
내가
막
영국에
유학생으로
도착해서
첫
발을
내딛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런던
Notting Hill Gate에
위치한
Kensington Temple Church의
밴드에서
기타를
치게
되었다.
아마도
한국인이
이
교회의
밴드에서
활동한
것은
당시까지도
내가
유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Harry는
바로
내가
속한
밴드의
리더였으며,
이
밴드는
토요일
저녁
집회와
일요일
2시
반
예배의
찬양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Harry는
원래
스리랑카
출신의
이민자였고,
그는
Council(구청)에서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면서
교회
밴드를
이끌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오랫
동안
교회
밴드를
했고
리더를
맡은
적도
있었지만,
Harry와
그
밴드의
연습량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매주
수요일
저녁
4~5시간
정도
연습을
했고,
한
달에
두
번은
토요일
낮에도
그렇게
4~5시간씩
연습을
했는데,
그렇게
연습을
하다보면
아무리
기타를
오래쳐서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잘
박힌
나조차
손가락이
욱신거릴
정도였다.
Harry는
그렇게
연습을
리드하고
또
예배
찬양을
리드하면서
정말
교회
일을
열심히
했다.
그는
평소
헬스클럽에
꾸준히
다니면서
운동을
통해
체력
관리를
했고,
키는
작았지만
온
몸에
군살없이
근육이
탄탄하게
자리잡은
건강한
체격이었다.
Harry는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도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아무래도
그에게는
내가
생전
처음
접해보는
한국인이었던
탓에
그는
나를
무척
흥미로워했고,
우린
그렇게
친해져갔다.
나는
그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불고기를
요리해주고,
그에게
한국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덧
해가
바뀌고
그와
또
밴드와
함께한
시간도
길어지면서
나는
조금씩
그의
단점을
보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그
시점에서
내가
직면했던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
등
삶의
과제들
때문에
밴드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교회에서
맡은
일을
철저히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정말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리더였지만,
반면에
다혈질에
까칠한
면이
있어서
가까이서
그와
함께하는
멤버들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그에게
상처를
받은
멤버들이
여럿
있었고,
결국은
나
역시
몇
번
그의
다혈질과
까칠함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교회에서
맡은
일을
철저히
또
잘
해내려
최선을
다하는
중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표출했을
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체류(비자)
문제를
비롯
영국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으나,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영국
시민권자거나
이미
모두
영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상태였고,
학생비자가
만료되던
중
향후
앞길이
캄캄했던
내가
그들과
동일하게
밴드
활동에
헌신할
수
없었기에
나는
결국
밴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2006년
가을날
수요일
저녁
연습
때
Harry에게
내
뜻을
전했고,
연습으로
바쁜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나는
그렇게
허무하게
밴드와
작별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이후
교회도
사는
곳과
가까운
한인교회로
옮겼고,
전공을
바꿔서
새로운
학업을
시작했으며,
현실적으로
영국에서
살아남기에
전념했다.
이후
어느덧
7년
가량의
세월이
흘렀고,
최근
그렇게
우연히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신경세포암이라는
다소
특이한
암에
걸렸고,
한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직
젊다면
너무나도
젊은
30대에,
그토록
탄탄한
체구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열정을
가졌던
그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되지
않는다.
내가
영국에
와서
만난
사람들
중
고인이
된
것도
그가
처음이다.
그렇게
그
밴드와
작별하고서
한참
뒤에
그로부터
전화가
한
번
걸려와서
반갑게
대화를
하고서
끊었던
적이
있는데,
그가
고인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왜
그와
다시
만남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그에게
실망도
했고,
그로
인해
불쾌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낼
인연은
아니었는데,
그저
나의
어리석음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또,
한
편으로는
새삼
죽음이라는
것에,
그리고
결국은
그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일
우리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렇게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우린
대부분
죽음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인
것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다.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조금이라도
더
잘난
자리에
오르려
아둥바둥
거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다투고
갈등하면서,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내면서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조차
나의
죽음이
1초라도
더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을
진정
깨닫는다면
행복하게만
보내기에도
너무나
촉박할텐데...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