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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주일에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지난 번 주일 아침에 일곱살 난 아들아이에게 설거지를 시켰더니 처음에는 늘상 대답하듯이 ‘아니오’라고 했다가, 금새 맘을 바꿔서 엄마가 그래주기를 원하면 하겠노라면서 부엌에 나가 발디딤판을 갖다놓고 설거지를 깨끗이 끝냈다. 앞치마를 두르고 하는 것을 깜박 했었는지 아침에 갈아입은 깨끗한 옷에 물이 많이 튀어있어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했지만 어린아이가 엄마 말에 순종해서 설거지를 한 걸 감안해서 눈을 질금 감아주기로 했다. 아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느긋하게 그날분의 성경을 읽으며 주일아침의 한가로움을 누렸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번주에는 시키니까 자기가 알아서 앞치마까지 다 두르고 했는데 설거지할 그릇들이 좀 부담스러웠는지 약 절반쯤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한다. 부엌에 나가보니 세제로 여기저기 거품이 난리가 아니다. 하긴 애한테 좀 심한 걸 요구했구나 싶어서 나머지는 내가 손 걷어부치고 다 끝냈다.
누군가 장차 아내를 위해 팔 걷어부치고 설거지해주는 우리 아들을 사위로 삼으면 좋아라할 것같다. 최근 우리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개’만큼 착한 남자애를 아직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한 아직 일곱살도 채 되지않은 여자아이가 하나 있어서 그아이 엄마랑 내가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었는지 모른다. 아이구, 제가 살았으면 도대체 얼마나 살았다고 저런 얘기를 다 한담? 그러고보니 여자아이들이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성숙한 것을 보게 된다.
달랑 하나 있는 아이의 밥 먹이는 일도 거의 해야될 숙제 수준으로 생각하고 시간이 급하면 성질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숟가락 들고 먹여주기도 하는 나에게, 아무개 어머니 아이를 너무 예뻐하면 안됩니다, 라고 말해준 고마운 분이 계셨다. 원래 등잔밑이 어둡다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때로 객관적이 되어보지않고서는 모를 수도 있는 법. 그제서야 나도, 아차 하며 깨달았다. 고운 자식일수록 더 엄하게 가르치며 키워야된다는 것을. 우리 엄마도 그래서 공부만 하겠다는 나에게, 여자는 온갓 집안일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 많은 일들을 시켰던 것일까?
‘자식을 낳아 길러본 사람이 부모 마음을 알게된다’는 옛말이 어쩌면 그렇게 딱 맞는지? 나는 우리애가 나에게 혼난 후 조금 있다가는 다시 엄마품에 달려들어와 안기는 것을 볼 때마다, 애는 정말 나를 닮지는 않았구나,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주어진 혹은 해야할 일만 아무 말없이 해내는 무뚝뚝한 성격의 나는 자라면서 우리 엄마한테 딸아이가 돼서 상냥하지못하고 아주 무뚝뚝하다고 얼마나 꾸지람을 들었던가. 나에게 섭섭했던 우리 엄마, 너도 너같은 딸 낳아서 한번 키워봐라, 고 했었는데 나는 또 그럴 때에는 지지않고서, 아유 나같은 딸 낳으면 좋지요,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생으로 학교 다니고 어쩌고 저쩌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딸을 낳았으면 정말 아찔할 것같다. 무뚝뚝한 엄마에 무뚝뚝한 딸이라니 그 얼마나 삭막한 집이 될까는 차치하고라도, 손재주없는 내가 어떻게 딸아이를 예쁘게 치장해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이런 점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 집에는 다정하고 저 혼자 멋부릴줄 아는 아들을 주셨나 보다. 가끔씩 머리를 세운다고 젤을 바르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어떤 분이 참 고맙게도 나에게, 엄마를 참 사랑하는 아들을 두셨네요, 해서 마음이 흐뭇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그다지 상냥한 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 나온 아들이 참 상냥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때가 있다. 언젠가, ‘엄마가 힘들어서 내가 설거지 다 했어!’하면서 환하게 웃던 아이, 우리 엄마도 때로 내가 말로 표현을 못했을지라도 내 마음은 지금의 우리 아이의 그것과 똑같았었다는 것을 눈치채셨을까?
다른 건 다 몰라도 우리 엄마 세대를 거쳐 나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이어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삶만은 자자손손 계속해서 이어져가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