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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젊은 여성분이 있다.
언젠가 첫눈 오는 날 무얼 젤 하고싶으냐는 질문에 가녀린 인상의 새댁 입에서 아주 낭만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내 예상을 팍 깨버리고 맛있는 음식을, 그것도 '아구작아구작' 먹고 싶다고 대답한 정말 재미있고 귀여운 분이다.
작은 아이가 둘인데도 가느다란 몸매에 음식을 아주 복스럽게 잘 먹는 인상적인 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 젊은 분이 자기 어머니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라고 하길래 내가 속으로 친정어머니를 결혼했기 때문에 저렇게 올려 부르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려는데, 부연설명으로 친정어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라고 했다.
대학 갓 졸업하고 아들만 둘 있는 집안의 둘째아들과 결혼을 했는데 형님보다 먼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사실은 그 댁의 첫며느리인 셈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바로 들어서는 바람에 맨날 자기는 늦잠 자고 늙으신 시어머님이 아침 저녁 다 지어서 이 어린 며늘아기를 딸처럼 걷워주신 모양이었다.
가끔씩 자기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늙으신 어머니는 부엌에서 쉴 새없이 부지런히 일하고 계시는데 안방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있는 이 나이어린 아내를 보면서, “당신, 이 집 며느리 맞아?” 라고 물으면서 놀리곤 했었단다.
나는 사실 그 시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성함도 모르지만, 그런 분이야말로 정말 한국사회가, 고부간의 갈등으로 안으로 곪아 터지고 그래서 상처뿐인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해소하는 한국사회의 시어머니들이 나아갈 한 바른 전형을 보여주신 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또 그 시어머니야말로 진정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분임에 틀림없다.
생각해보라! 시어머니로부터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은 그 어떤 며느리가 자기 남편을 잘 공경하지 않을 것인지? 그 젊은 분 또한 정말 자기 남편을 참 잘 공경하고 사는 걸 보면 그게 다 현명한 시어머니의 내리사랑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은 조금 덜 하겠지만 꽤 오랫동안 남아선호사상에 물들어 있었던 많은 한국 어머니들이 아들을 키울 때에는 거의 왕자님처럼 떠받들다가 그 아들이 커서 결혼만 하면 예전의 왕자님 신분은 어디다 팽개쳤는지 그때부터는 거의 일개 머슴 수준으로 대하는 게 다반사였고 아직도 그런 풍조가 남아있는 케케묵은 집안도 여전히 있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어머니가 그 아들의 아내가 된 며느리를 대하는 걸 보면 그 어머니가 진정 자기 아들을 왕자로 대하는지 아니면 머슴으로 대하는지 세살 먹은 아이라도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느리를 하녀처럼 혹은 식모(요즘은 '가정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처럼 부려먹는 어머니는 아니라 부인해도 자기 아들을 은연중에 하인 혹은 머슴이나 진배없이 대우하는 것이다.
귀한 왕자님의 아내인 공주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해봐라. 아무도 없죠?
대체로 여자들이 자기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할 때가 바로 '시'자 붙은 식구들의 눈에 보이지않는 횡포가 거듭되면 그게 쌓이고 쌓여서 가슴이 한이 맺힐 때부터라고 한다.
요새는 아주 교양있는 시어머니들이 자기 가족들 특히 자기 남편앞에서는 며느리를 올려주고 안보는 데서는 무지막지 부려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시어머니들은 교양은 커녕 정말 시시한 시어머니들이다.
내가 아는 참 예쁜 어른이 그러셨다.
자기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저녁 먹은 설거지까지 해주는 건 정말 좋은데, 귀하게 키운 자기 아들이 장차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들어가서 얼쩡거리는 걸 보면 별로 마음이 편치않을 것같다고. 아유, 그러시면 어떡해요? 하고 눈을 살짝 흘겼었지만, 어려서부터 눈과 마음에 익숙한 그러한 사회풍토속에서 자라온 그분을 달리 비난할 수도 없었다.
아들 하나 가진 나는 조금 손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맨날 밥 챙겨서 차려주는데 나중에는 덤태기로 며느리까지 챙겨주어야 되니까 말이다.
하기는 이래서 며느리로부터 존경받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길은 말처럼 생각처럼 결코 쉬운 게 아닌 모양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사랑과 땀이 함께 어우러져야 그렇게 되어지는 법.
그래서 한국의 많은 시어머니들이 그 험난한 '좁은 길'을 버리고 대다수가 선택하는 '큰 길'을 가는 것도 사실은 아무 이상할 게 없는 현실이다.
가끔씩 설거지를 부탁하면 작은 발판을 딛고 서서 혼자서 설거지를 다 하는 우리 아들, 평소에 연습을 해두면 장차 사랑받는 남편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법을 지금부터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