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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 한개! (9월1주)

by 유로저널 posted Aug 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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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 한개!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여름방학이 다 끝나기 전에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루 일정으로 열었다.  아침부터 주륵주륵 쏟아지는 빗속에서 오후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개였지만, 그래도 조무래기 아이들 데리고 성경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온 우리 애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애, 남자애는 몇 명 왔든?”
“나 한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몇 명이라구?”
그랬더니 목소리를 더 높여서 대답한다.
“나 한개!”
아이구 맙소사!  도대체 저 아이 한글학교 선생님이 누구였지?  치맛바람 날리는 엄마처럼 나도 불끈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내 얼굴만 더 붉어질까봐 꾹 참는다.  사실인즉슨, 지난 학기까지 우리 아이의 한글학교 담임선생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숨을 쥐구멍이 어디 있나?
“에드윈, 사람은 한개 두개 세는 게 아니라 한명 두명 하고 세는 거야.”
그리고는 잠시후에 아이가 제대로 알았는지 보려고 다시 물었다.  
“오늘 성경학교에 남자애 몇 명 왔어?”
‘명’자 발음이 그렇게도 어려웠든지 제 딴에 그걸 피해서 꾀를 써서 대답하기를,
“나, 한 아이!”  
아이구, 내가 졌다.  ‘명’자 얘기가 나와서인데, 아는 분 아드님이 지금 런던의 임페리얼 대학에 다니는 ‘우명’군이다.  우리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 형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명’자 발음을 잘 못해서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곤 했었다.  우멍이 형!  우멍 우멍, 멍멍이… (우명아, 나이 많은 네가 이해하렴.)
그래도 나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일학년이 되는 만 일곱살이 되어서 드디어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우리 아이,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모음과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자음들을 다 읽고 쓸 수 있는 걸 보면서 그동안 다그치지않고 이 날이 오기를 참고 기다려준 보람이 있었다.  또 독일의 한글학교 선생님들이 애써서 만들었다고 전해들은 책, [한글 기초]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수고한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그런데 일상언어는 책에서 배운 것과는 또 다르게 나올 수도 있는 법, 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한국어를 터득하는 게 이래서 참 어려운 모양이다.  한 날은 우리 애도 그걸 조금  깨우쳤는지 나더러 묻는다.
“엄마, 왜 서연이는 한국말은 잘 하는데 영어는 좀 못하고, 나는 영어는 잘 하는데 한국말은 좀 잘 못해?”
“서연이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영국 온 지 얼마 안되어서 한국말은 잘 하고 영어는 좀 어렵고, 너는 여기서 태어나서 영어는 잘 하고 한국말이 좀 서투르지.”
“여기가 아니고 런던이야!”
아, 자식!  진짜, 대게 꼬치꼬치 캐고 넘어가네.  
“런던도 여기 글라스고도 다 영어를 쓰는 나라, 영국에 들어가니까 똑 같은 거야.”
‘남자애 한개’ 얘기를 아는 분과 우스개 소리로 했더니 그분 얘기는 더 웃겼다.  한국에 들러 한국 문화도 배울 겸 언어도 향상시킬 겸 아이들 프로그램에 넣었는데 거기서 한 날은 가족에 대한 얘기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었단다.  그분 따님 하나가 제법 유창해진 한국말로 이렇게 했단다.  ‘우리 가족은 다섯마리입니다.’  웃다가 행여 지붕이 꺼지지 않았었는지?
“그래도 한개는 나은 편이야.  우리는 완전히 그날 동물가족이 되어버렸으니까!”
  금요일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학교 바로 맞은 편의 낮은 담장안에 있는 어떤 아이에게 우리 애가 아는 체를 했다.  “하이, 리암(Hi, Liam)” 보아하니 한 학년 낮은 2학년 같았다.  제 반에도 같은 이름의 아이가 있어서 내가 거들었다.  “리암이 몇명 있네.”  그랬더니 우리 아이 왈, “오운리(only 단) 두개야!”  꽈당, 그 자리에서 내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언제쯤 우리 애가 한국어를 영어처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날이 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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