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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병동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것 자체를 꺼리거나 혹은 꼭 가야될 경우에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너무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다. ‘병을 키운다’는 말이 어쩌면 사람들의 이러한 성향때문에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병원에 가는 건 별로 달갑지가 않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병원의 여러 병동중에서 아주 즐거운 병동을 하나 알게되었다. 다름아닌 ‘분만 병동’이 바로 그곳이다.
물론 첫아이의 엄마가 되는 여성들은 출산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제법 겁에 질려오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 역시 그 힘든 분만의 고통이 질병에서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서인 줄을 알기에 진짜 몸이 아파 병으로 오는 환자들과는 마음이 영 다른 것같다. 또한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선생님들이나 간호사나 조산원들 역시 병동에 오는 산모들에게 아주 즐겁게 새 생명의 탄생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게 보통이다.
일때문에 분만병동에 몇번 가게 되었는데, 가서 산모를 기다리는 동안 이 방 저 방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갓난 아이들의 울음소리… 저 어린 생명들이 어떻게 엄마 뱃속에서 열달동안 컸을까? 꼬물꼬물 발가락을 보아도 신기하고 인형 손같은 손가락을 보아도 그 오묘한 생명의 신비를 다 알 수가 없다.
아기를 낳은 엄마들은 낳아서 홀가분하고-그러나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아기를 낳으러 온 엄마들은 이미 아기를 낳은 엄마들을 은근히 부러워한다.
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거치는 엄마들의 고통과 수고를 생각하면 아기들은 흔히 그저 한순간 즐기는 쾌락외에는 그에 따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는 남자들의 조금은 야비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산물이겠지만 그래서도 더욱 성을 단순한 쾌락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이렇게 엄마 아빠들의 멋진 실수(?)로 태어난 사람들도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내가 아는 몇몇 귀여운 아이들만 해도 그 엄마 아빠들이, 이제 아이는 그만! 하던 중에 얼떨결에 만들어져 태어난 아이들이다. 어떤 엄마는 자기 아들이 찢어진 콘돔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얼마나 자기 엄마를 위하는지 옆에서 보는 사람조차도 부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생명은,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 탄생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것이라 여겨진다.
분만병동에 통역일로 가있다가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분만병동이라는 곳은 그곳에 가봤든 안가봤든 누구나가 다 알겠지만 무슨 일이든 단번에 쇳뿔 빼듯이 일이 순식간에 해결(!)되지는 않는 곳이다.
하여튼 그날도 며칠 있으면 아기를 낳을 여자분의 영양주사를 맡는 자리에서 지루하고 긴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를 서너번 보아온 병동의 청소하는 한 나이 좀 지긋한 여자분이 조금 안면이 트였다고 나더러 묻는다.
“당신 딸은 예정일이 언제예요? 아직도 애기를 안낳았어요?”
아니, 뭣이라? 당신 딸이라니? 그럼 지금 이 병동 침대에 누운 여자가 내딸?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얘기란 말인가?
나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이분은 제 딸이 아니고 저는 이분 통역원으로 왔는데요. 그리고 사실은 제가 여기 이분보다 꼴랑 한살밖에 더 많지 않은 걸요.”
나는 내가 산모의 엄마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녀가 묻지도 않은 나이차까지 아주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햐, 그랬더니 그만 수그리고 넘어가도 될 것을 그녀도 지지않겠다는 듯이 내 말을 되받아쳤다.
“왜, 어떤 의붓엄마들은 의붓딸보다 나이가 더 작을수도 있잖아요.
그 청소하는 아주머니와의 사이에 오고간 얘기들을 한국말로 해주니 산모가 연신 웃어대면서 그곳에 온 남자통역원은 자기의 남편으로 오해하더라는 얘기를 한다. 참, 여기저기 분만병동에 다니다보면 나는 본의아니게 사실은 딸이 하나도 없는데 딸을 혹은 의붓딸을 여럿 가진 엄마로 오해받게 될 것같다. 이 사실에 울어야되나 아니면 웃어야되나?
이러한 오해가 생기든 말든 아이들이 태어나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나는 것을 보면 그게 정말 반갑고 기쁜 일이다. 이래서 분만병동에 가는 일은 그 오랜 기다림의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자칫 일상에 파묻혀 잊기쉬운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