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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버스를 탔는데 앉을 자리는 거의 다 찬듯하고 또 가야할 곳도 그다지 멀지않아서 그냥 버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서있었다. 누군가가 ‘이보세요’ 하고 부르길래 나는 설마 하고서 뒤를 돌아보지않았는데, 그게 바로 나를 향해서 부르는 말이었다. 돌아보니 아주 깡마르고 키가 큰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자기가 앉은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앉으실래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아니 괜찮아요, 정중하게 거절을 하고 그냥 그대로 서있는데 잠시 후 버스가 어느 정류소에 다다르고 내 근처의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몇몇 내리자 그대로 서있기도 뭐해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까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려했던 젊은 친구를 보니 어머나 세상에 자기도 무거운 우편가방을 메고 있으면서 그자리를 나에게 양보하려 했다니… 속으로 주님, 저 마음씨 고운 청년을 축복해주세요, 기도하고 난 뒤 곰곰 생각하자니 내가 벌써 자리를 양보받아야 할 나이가 되었나? 괜스리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듯하여 버스안을 그냥 휘 둘러보는데 저 뒷쪽의 어떤 은발의 할머니가 나를 향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게 보였다. 나도 자기랑 같은 할매과(자리양보받는 나이)로 입성한 걸 축하하는 건 아닐까 싶어 괜히 기분이 좀 씁쓸해졌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약과였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어떤 청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면 자기는 도저히 어른한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기라도 한다는듯이 마치 오뚜기가 튀어오르듯이 벌떡 일어서더니 그 자리를 나에게 앉으라고 손으로 친절하게 안내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 정말 이런 양보까지는 아직은 안받아도 되는데… 도대체 나의 그 무엇이 젊은 친구들로 하여금 자리를 양보하도록 만들까? 나는 외가쪽의 유전으로 흰머리가 나이 또래에 비하여 빨리 나는 편도 아니고 이마 한쪽 귀퉁이에서 어쩌다 한두개쯤 나는데, 그렇다면 내 무거워보이는 가방이 문제일까? 쩝, 가방이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중3때 반친구들이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등교길에 나만 보면, 우리 꼬마 무거운 가방 땅에 끌리겠다, 며 앞다투어 내 책가방을 학교까지 들어다주고는 했었다. 그래도 땅에 질질 끌면서 내 책가방을 들고 다닌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반에서 제일 작은 아이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다니는 게 그때 동기생들의 눈에는 참 안되보였었나 보다.
그럼 이번에는, ‘이고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우랴’ 하는 마음으로 젊은이들이 체구에 비해 가방이 무거워보이는 나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걸까? 그렇다고 가방을 또 바꿀 수는 없고, 나이들어가는 건 어찌할 수가 없나보다.
나이를 의식하지않으려 하는데도 어린 아들녀석이 이런저런 카드마다 혹은 그림에 엄마를 그려놓고 꼭 제엄마 나이를 적어놓는 바람에 내 나이를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막내라서 자기 아빠 나이가 아주 많은 것도 자랑거리로 안다고 하니 아마 우리애도 엄마 나이가 많은 걸 그런 자랑거리중 하나로 아는 모양이다. 요 녀석이 나중에 십대가 되어서는, 엄마는 왜 이렇게 나이가 많아요? 하고 괜한 투정을 부리면 어떡하나 싶어진다.
나이가 들어가는 거, 그래서 처음으로 맞추었던 돋보기 안경을 좀더 도수높은 안경으로 교체해야 했던 일. 작은 글씨는 도대체 글씨인지 아니면 이런저런 점들인지 확연히 구분이 안가던 그 낭패감, 이렇게 더 나이들어가면 읽고싶은 책도 마음껏 못읽고 나중에는 오디오북으로 대체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내 눈이 더 나빠진 건가요? 하며 슬프다고 하니까, 그래도 당신은 일상생활에서는 안경이 필요치않으니까 다행이잖아요. 밝은 면을 생각하세요, 나를 격려해주던 안경점 시력검사원의 긍정적인 대답이 나로 하여금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그래서 독서용 안경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것에 대한 서글픔을 누그러뜨려주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깊이 소원하는 한가지 바람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내 겉사람은 비록 후패해져갈지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 겉은 비록 쭈글쭈글 늙어갈지라도 속은 늘 하나님 주시는 평안과 참생명으로 가득차 선함과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그런 사람이길 바라마지않는다.
새해다. 이크, 나잇살이 또 느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