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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의 전쟁

by 유로저널 posted Feb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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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평소 같은 버스안에서 아침마다 자주 보던 선생님을 버스가 오가는 길이 아니라 걸어서 올라가야하는 다른 길에서 마주쳤다.  아니, 선생님 왠 일이세요? 하면서 놀라워하니 버스를 몇 정거장 더 일찍 내려서 그 다음부터는 걸어서 학교까지 출근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래서 제가 요즈음 선생님을 많이 못보았군요, 인사를 했더니 이유인즉슨, 바로 살과의 전쟁!  이 선생님은 좀 몸집이 크긴 크시다.  
무슨 수술을 하나 받아야 하는데 담당 의사가 체중을 어느 적정선까지 줄여야 그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가족과 친척들까지 모두 나서서 상금 겸 격려금까지 걸고서 이 선생님이 살을 빼도록 응원하고 있다고 얘기해주신다.  
그리고 그렇게 아침 출근 시간에 버스 몇 정류장 거리를 걷기 시작한 이래로 몇 파운드(1파운드는 454그램)를 뺏노라고 말씀하셔서 그래요, 선생님 정말 턱밑의 선이 예전보다 훨씬 더 날렵해 보이는데요, 하면서 나도 이 선생님께 응원을 띄어주었다.    
어쩐지 한동안 이 선생님이 안보인다 했었지.  내가 아침 출근 길에 좀 서두르려는 눈치가 보이면 자기가 애 데리고 학교에 갈테니까 나더러 곧장 일하러 가라고 친절을 보여주시는 참 마음이 고운 분이기시도 하다.
애, 너 나랑 같이 학교에 갈래? 하고 우리 애에게 물으면 우리가 자라던 어린 시절에 선생님께 결코 거역할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애는 대번에 ‘아니오!’하고 대답을 해버려서 아직까지 그 선생님의 호의를 받아보질 못했지만 그 제의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흐뭇해졌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그 선생님과 가끔씩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걷다보면 선생님의 몸집이 무거워서 언덕길 오르면서 숨을 가쁘게 내쉬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좀 힘이 들 때도 있었다.  
나도 아주 날씬한 편이 아닌데 그 선생님 옆에 있으면 나는 그저 코끼리 옆에 매미새끼처럼 보일 지경이다.  
살만 좀 적게 쪘으면 참 좋을텐데….  
나이 들면 나잇살이 늘어서 체중은 그대로 있어도 옷을 더 크게 입어야 된다는데 여자들은, 특히 아이를 하나 둘 정도 낳은 여자들은 극히 예외적인 먹어도 먹어도 살 잘 안찌는 질 나쁜 돼지(?)과에 속하는 소수의 몇몇 빼고는 다들 출산 후에도 예전의 살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살아, 살아 내 살아 타령이 나오게 되는 모양이다.  
아마 그 선생님도 어쩌면 체질이 질 나쁜 돼지과가 아니라서 그렇게 되셨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우리 아이가 우리 앞서 걸어가는 어떤 여자분을 보더니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엄마, 왜 저사람은 빵덩이가 저렇게 커?”
오늘같은 날은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로 물어봐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앞에 가는 그 사람이 들을 세라 걱정하면서 아이를 조용히 나무랐다.
“쉿, 그렇게 말하면 실례야.  다른 사람 생긴 모습 갖고 놀리는 건 아주 나쁜 거야.”
앞에 가는 여자의 커다란 엉덩이를 보면서 실실 웃어대는 녀석이 내 아들이라니!!  고연 녀석같으니라구.  
당장에 회초리 몇 대 감이지만 공공장소인데다가 미성년자-일곱살-이므로 그 철딱서니 없음때문에 봐준다.  
햐, 정말 엄마가 아이들 교육시켜야 할 부분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요새는 살과의 전쟁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 너도나도 너무나 많은 것같다.  
나도 요즘은 그 좋아하던 다방커피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짭싸름한 블랙커피로 전향했다.  
비만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많이 걷고 먹는 음식은 거기서 거긴데 왜 체중이 좀 줄어들지않는 걸까 고심하다가 커피에 들어가는 설탕과 크림-나는 크림 대신 우유를 넣지만-이 어쩌면 주범인듯해서 실천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 앞서 가던 그여자분 궁둥이가 참 크긴 컸다.  
매너가 뭔지?  큰 빵덩이를 큰 빵덩이라고 말해도 혼나게 되는 세상이니…그놈의 살이 웬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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