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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학교에서 아주 잘 하면(우리 애의 경우, 공부보다는 행동거지에 중점을 둔 소리이다) 이번 주 토요일에 ‘버렐(The Burrell Collection 버렐 소장품)박물관’에 데리고 가주세요? 나 아주 잘 할 거예요.”
“애 좀 봐! 지난 번에 내가 가자고 할 때는 가기 싫다고 고개 살레살레 저을 때는 언제고 지금은 학교에서 갔다온지 며칠 됐다고 또 가자고 야단이야?”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는 데인줄 몰랐단 말이예요.”
아이의 교육목적으로 가끔씩 박물관에 데려가면 행여라도 고가품 물건에 손을 대서 깰까봐 겁나고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쉬임없는 주의를 주는 것도 너무 피곤하고 그래서 한동안 박물관 견학을 잠시 중단한 적이 있었는데, 예전 한국학교에서 늘 고학년들만 야외학습으로 가곤 했던 버렐 박물관에서 요즈음 들어 ‘고대 그리스의 운동선수들, 전사들 그리고 영웅들’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그곳에 한번 다녀온 바로 그날부터 아이가 졸라대기 시작하는데, 좀체로 그러한 적이 없던 애가 자기쪽에서 먼저 박물관에 가자고 하니 어찌 보면 이것도 좋은 교육효과가 있으리라 판단, 날씨가 좋으면 가자고 하니까 그자리서 이 아이가, 하나님 토요일에 비 안오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한다.
사실 무슨 반지 하나를 사는 주목적도 있었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 아이가 그 좋아하던 TV프로그램도 다 제쳐두고 집을 나섰다.
이쯤 되고 보니 오히려 내 쪽에서 도대체 그곳에 뭐가 있길래 우리 아이가 이토록 가고싶어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이가 계속 얘기해주는 어떤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그 그림내용이 어떤 사람의 바지 뒤쪽이 그만 가시에 걸려서 옷이 벗겨지는 바람에 엉덩이가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해줄 때마다 아이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연신 웃어대곤 했다.
물어물어 그 박물관이 있다는 공원안으로 들어섰는데 뭐 5분안에 도착할거라는 어떤 사람의 말과는 달리 박물관 귀퉁이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애, 너 어디로 가는지 몰라? 지난 번에 학교에서 왔잖아!” “그때는 여행버스 타고 왔어요.” 아이구, 일곱살 난 녀석에게 묻는 내가 바보지.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저만치 가느다란 실마리처럼 진한 비취색 빛깔의 세로로 기다란 간판이 희미하게 보인다.
“애, 저기가 ‘버렐 박물관’이니?”
“그게 아니고, 까만 사람이 고추를 내놓고 있는데…”
계속 걸어가니 잔디밭과 연결된 지하층에 있는 버렐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온 모양이었다.
입구에 도착해서야 왜 우리 아이가 까만 사람이며 고추를 운운했는지 알 만했다.
삼각형의 긴 기둥으로 세워진 표지판이 거기 서 있었는데 내가 본 비취빛 면에는 세로로 길게 버렐 콜렉션(The Burrell Collection)이라 씌여 있었고 그 옆면에 오랜지빛 바탕에 검은 색 판화로 찍어놓은 듯이 그려진 남자가 하나 있었는데 옷을 그리지 않아서 말하자면 누드였다.
아직 ‘버렐 콜렉션’까지 읽을 수 없었던 우리 애는 그 그림문자로 박물관 입구를 기억해두었던 모양이었다.
아마 이래서 옛날에 글 못읽는 대중을 위해서 상형문자가 생기진 않았을까 싶다.
일차로 원하던 무드반지-기분에 따라서 색깔이 열두가지로 변하는-부터 사고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녔는데 제가 먼저 와본 적이 있다고 으시대며 걷는 폼이라니…
로댕의 조각작품들도 있었고 괜찮은 그림들도 많았는데, 우리 애는 자기가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그 웃긴 그림-엉덩이가 삐져나온-을 봐야된다며 나를 아래층으로 이끌었다.
일곱살짜리 사내아이들에게는 그런 웃기는 그림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이었다.
못말리는 개구장이! 돌아나오면서 서있는 까만 남자 조각상의 엉덩이를 보자마자 얼른 자기 눈을 가리며, 아 나는 안볼거예요, 하면서 게걸음으로 앞으로 온 녀석이 갑자기 손을 쭉 뻗어올려 그 조각상의 고추를 슬쩍 만졌다. 엉덩이는 안보겠다던 녀석이 그럼 고추는 왜 만지나?
그래도 제 엄마에게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커피 한잔-옆구리 찔러 절 받았지만-을 대접한 기특한 구석이 좀 있는 녀석이었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마음은 즐거웠던 그날, 평생 모은 귀한 소장품들을 나같은 소시민들을 위해 기증한 ‘버렐’이라는 분께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