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막말 파문 '귀태와 당신'
요즘 대한민국은 ‘말’의 성찬이 벌어지고 있다. 좀 배운 사람이나 덜 배운 사람이나 생소한 ‘귀태(鬼胎)’라는 단어나‘당신’이란 표현 때문에 벌어지는 정치권의 막말 파문은 사실 당사자가 아닌 필부들에게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 이 말들이 회자되고 있기는 하다. 혹자는 사전을 찾아가며 있네 없네, 혹은 옳네 그르네로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씩 알아볼 필요는 있을 법도 해서 이번에 좀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강상중은 '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 2012)에서 박정희를 '제국의 귀태'라고 표현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은 당연히 그의 생물학적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주국이라는 희대의 괴뢰국이 박정희라는 사회적 존재를 낳았고, 그것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뜻이다.
경북 문경의 어느 소학교 선생으로 있던 박정희는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에다 천황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혈서를 써서 보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그런 돌출행동이 눈에 띄었을 것이고(이 사건은 신문에까지 보도된다),그는 몇 가지 자격 요건상 결격 사유가 있었음에도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뛰어난 성적으로 이 학교를 졸업한 그는 다시 일본육사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가 해방 후에 여러 우여곡절을 넘기고, 5.16 후 일본과 국교를 회복하고 차관을 들여오는 과정에서바로 이 만주국 인맥을 활용한다. 그 인맥 중에 하나는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인 기시 노부스케도 포함된다.
그는 만주국의 정책을 좌우하던 고위 관료였고, 전후 일본 총리를 역임한다.
박정희가 만주국의 '귀태'라는 것은 그가 추진한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같은 숱한 정책들이 만주국에서 실험되었던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국기에 대한 맹세나 반상회 같은 것도 만주국에 저작권이 있다고 한다. 제국의 귀태는 박정희만이 아니다. 애국조회와 운동회 같은 것 역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국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귀태'라는 말이 한국어 사전에 올라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마 일본어 사전을 베끼다 함께 올라 갔을 것으로 보이는 이 '귀태'라는 말 자체가, '제국의 귀태'는 아닐까.
'자궁 속이 포도송이처럼 되어 태아의 형태가 없어지는 병'을 원래의 뜻으로 하는 이 말은, 결국, 자궁 이상으로 아이가 유산된다는 의미이다. 소위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이 말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라는 뜻으로 맨처음 썼다는 것도 이제야 알겠다.
‘당신’이란 표현은 더 가관이다. 실제 이해찬 고문이 한 표현을 보자. "박 대통령은 이제 국정원과 정말로 단절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달라"며 "그래야 '당신'의 정통성이 유지된다"라고 했다.
이 ‘당신’이란 표현은 그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뜻이 갈린다.
먼저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로 상대높임인 하오할 자리에 쓰는데 이 경우에는 듣는이를 높이는 용법이다.
두 번째는 부부사이에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용법은 ‘자기자신’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할머니는 뭐든 당신 고집대로 하셨다”에서와 같이 3인칭 존대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면전에서 맞서 싸울 때 상대를 낮춰 부를 때 사용하는 것도 또한 ‘당신’이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뜻이 갈리니 이해찬 고문의 표현은 최소한 면전은 아니니 낮춤은 아닌 셈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첫째 용처거나 혹은 셋째 용처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셋째 용처는 주로 문어체에서 쓰며, 첫째 용처는 하오체와 연결되니 이도저도 아닌 셈이다. 결국 그 표현을 쓴 이해찬 고문이 실상 제대로 용처를 적확하게 쓰지 못했다는 얘기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론은 이렇다. ‘말’이란 결국 쌍방간에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인 체 하나, 실상은 일방적으로 전달되어 그저 관습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단은 그 ‘소비’하는 방식에서 난다.
그저 말에만 매몰되어 국정원 국정조사나, 민생, 수방대책 등 정작 중요한 일은 놓치고 지나가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