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진정한 속죄
전두환 전 대통령 집과 장남 사무실에 대한 검찰 수색을 TV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했다. 곳곳에서 고가의 미술품과 함께 황동불상까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경악에 가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씨 일가의 행동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과 가족이 무엇이 부족해 보관하기에도 버거울 만큼의 작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단 말인가?
1주일 동안이나 이어진 검찰의 압수수색은 마치 금은보화가 가득한 ‘추장’(酋長)의 집을 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사회에서 생활공동체를 통솔하고 대표하던 우두머리’. 추장의 사전적 의미다. 부족민의 안위와 생명을 지켜주는 대신, 생사여탈권을 비롯한 모든 것을 갖는 추장. 전씨의 치부는 미개한 종족민(種族民)사회 추장의 행동과 닮아 보였다.
재임시절 재벌 등으로부터 통치자금이라며 1조 원에 가까운 비자금을 걷었던 전씨가 아직 내지 않고 있는 추징금은 1672억 원. 월급 300만 원짜리 회사원이 4644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검찰은 전씨 일가가 검은 돈을 고가의 미술품 구입 등에 사용했다는 근거를 밝혀 최대한 추징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압수수색의 중요 타깃이 된 전씨 큰아들 재국씨는 1991년 설립한 출판사 ‘시공사’를 운영하면서 각종 의혹을 받아왔다. 아버지의 비자금이 재국씨의 사업에 직접 쓰였다는 흔적은 현재로선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1991년 30대 초반에 창업한 재국씨가 출판사 설립에 들어간 목돈을 어디에서 구했는지, 매년 막대한 적자를 내면서 어떻게 버젓이 운영하고 있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시공사 창고에서 압수한 미술품은 입을 벌어지게 했다. 동양화와 서양화, 서예, 족자에 황동불상까지 수백 점이나 됐고 국내외 유명작가 50여 명의 작품이 포함됐다. 천경자·김종학·육근병·정원철·권여현 등 국내 작가뿐 아니라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 이탈리아 조각가 스타치올리 등 외국 작가의 작품까지 나왔다. 전씨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은 세계 유수 미술관의 소장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전씨가 비자금을 숨겨놓은 수법도 가관이었다. 검찰은 2004년 불법 대선자금을 추적하던 중 한 노숙자의 계좌에서 비자금의 꼬리를 잡아 74억여 원을 추징했다. 이를 지켜본 외국인들은 전두환 통치시절의 대한민국을 추장 지배 체제 정도로 비꼬지는 않았을까.
연일 국민적 지탄을 받는 전씨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 ‘7년 단임’을 치적으로 자부하며 끝까지 호기를 부리는 그가 미납 추징금은 물론, 부당하게 모은 전 재산을 스스로 내놓고 용서를 구할 마음은 없느냐는 것이다. 더불어 광주 망월묘역과 5·18 민주평화광장을 찾아 본인이 자아낸 눈물과 상처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는 게 진정한 용기가 아니겠느냐고?
이번 압수수색은 전씨가 생을 마칠 때까지 ‘전두환 부족’의 추장(Chief)으로 살 것인지, 그나마 참회를 통해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President)으로 남고 싶은 지를 결정해야 할 기로다. 올해 만 82세로 약간의 치매가 있다는 전두환씨에게 최후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다.
욕심이 과하면 반드시 탈이 생기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면 더 많은 부를 축척하여 세간의 비웃음을 사기보다는 과거를 반성하고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자세로 국가에 자진하여 추징금을 납부하는 것이 한 국가의 지도자였던 사람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