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써 6년 째 런던 남서부 외곽
뉴몰든에서 런던 시내로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아마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마찬가지일 듯 싶은데, 나 역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의 기차를 타고, 또 정해진 칸에
타곤 한다.
그러다 보니 퇴근길 기차에서 만나는 사람은 제각각이지만, 적어도 아침 출근길 기차에서는 늘 발견하게 되는 몇몇 얼굴들이 있다.
그 날 아침도 평소처럼 기차에 올라 마침 자리가 있어서 앉았는데, 내가 앉은 자리의 좌석은 두 자리씩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는 좌석이었고, 마침 내 앞자리에는
정장 차림의 백인 남성이 앉아있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 역시 서양인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대략 35세 안팎의 멀쩡해(?) 보이는, 딱 봐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이 분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무심결에 보니 자꾸만 손톱을 물어뜯는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이 분을 관찰하려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의 반복적인 행동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 것이다.
뭐 손톱을 물어뜯는 게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닌 것이고, 그저 한 두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가만히 보니 정말 쉴 새 없이 손톱을 물어뜯었고, 한
손가락만 갖고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모든 손가락을 돌아가면서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는 좀 신기하기도 하고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려나 보고 싶기도 해서 당사자는
알아채지 못하도록 계속 지켜봤는데, 결국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런던 워털루역에 도착하기까지
그 분은 손톱 물어뜯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기차가 워털루역에
도착한 이후에도 일어서서 걷는 중에도 여전히 그의 손가락은 그의 입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원래 영국에서는 아무도 남의 일에 관심이 없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인데, 이 날만은 그 분의 손톱 물어뜯기가 워낙 깊은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는 아침 출근길에
그 분을 몇 번이나 더 발견했고, 그는 여전히 그렇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의 손을 보니 늘 그렇게 손톱을 물어뜯었던 탓에 손톱 부위가 잘게 잘게 뜯겨 있었고, 손가락 끝부분이 늘 침에 닿아서였는지 다소 (물에 불듯) 불어있었다.
더 이상 뜯어먹을 부위가 남아있지 않은 듯 한데도 그렇게 끊임 없이 손톱을 물어뜯는
그의 습관은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이어져 왔을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행동도 아니고, 위생 상으로도 고쳐야 하는 습관이었음이 분명한데도, 그는 여전히 그 습관을 유지해왔을 것이고,
그러나 그는 멀쩡한 어른으로서 직장을 다니고 평범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린이처럼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혹은 고치지 않은 정장 차림의 멀쩡한
중년 남성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어른의 탈을 쓴 어린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남성은 손톱을 물어뜯는, 일종의 겉으로 드러나는 습관을 보였던 것이고, 우리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게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어린 시절의 습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한 두 가지씩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행동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생각이나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
비록 겉모습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고, 또 그렇게 성장하면서 보고 배운 것들에 의해 우리는 어른처럼 말하고 어른처럼 행동하게 되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후천적인 학습 혹은 외부로부터의 요구나 강요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일 뿐, 결국
우리 모두는 영원히 어린이들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비록 이렇게 어른이 되었고 어른으로 살고 있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어린이 시절 습관이나 사고방식 중 일부분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이 고쳐지지 않은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것이 본능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고쳐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고쳐야 하는 것은 아는데도 고치지 못하는 나약한 의지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 점에 있어서 만큼은 나 역시 어른의 탈을 쓴 어린이일 뿐인 것이다.
사회에서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 받고, 돈을 벌고,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어른 구실을 하고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내가 기차에서 본 그 남성이 손톱을 물어뜯었던 것처럼 여전히 그 안에 어린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각박하고 치열한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듯 했다.
무시무시해보이는 사회의 모습,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 어른의 탈을 쓴 어린이들의 영원히 고쳐지지 않는 유치한 이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른의 육체를 갖고서 어른의 말로 싸우지만, 결국 그것은 그들의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주먹질하던 싸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이 그렇게 다투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다시 함께 어울려 놀듯이 어른의
탈을 쓴 어린이일 뿐인 우리들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다툼은 잊어버리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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