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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 남자' 2인자는 '총리냐,비서실장이냐'

by eknews posted Aug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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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 남자' 2인자는 '총리냐,비서실장이냐'

정권위기 전환용 '유신잔존세력' 김기춘 비서실장 깜짝 발탁은 '시대 역행'

유신헌법 초안 관련자, 초원 복집사건 당사자,노무현 전대통령 탄핵 주도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역댜 정권에서도 시간에 따라, 사건에 따라 '대통령의 남자이자 정권의 2인자' 자리를 놓고 실세들 간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펼쳐왔다.
대통령의 신임을 앞세운 '대통령의 남자이자 정권의 2인자' 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국정 전반을 쥐락펴락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현재 여권의 '왕의 남자' 실세로는 형식상 정홍원 국무총리,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있지만 당 대표를 2인자로 인정한 적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최근 박대통령이 김기춘(74세) 신임 비서실장을 깜짝 등용하면서 총리는 허수아비로, 비서살장이 실세로 등극했다는 말이 여권을 중심으로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이에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국정원 국정조사를 두고 야당이 장외투쟁까지 벌어지는 등 반발 여론에 몰리던 박 대통령이 유신세대 인사까지 자신의 최측근에 중용하는 '충격' 인사를 단행해 국면전환을 노렸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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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실장은 '검사사시절 1972년 유신헌법 초안 작성자, 1992년 대선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초원 복집 사건,국회의원 시절에는 한나라당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노무현대통령 탄핵 주도'한 역사적,정치적으로 톱스타(?)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총리와 비서실장 두 사람은 나이부터 김 실장이 5살 많다. 김 실장은 1939년생이고, 정 총리는 1944년생이다. 경남중·고 선후배 사이에 사법시험 기수도 김 실장이 12년이나 빠르다. 당연히 검사 생활도 김 실장이 먼저 시작했다. 

1987년 김 실장이 법무연수원장으로 있을 때 정 총리는 그 밑에서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김 실장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정 총리를 추천했고,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에게 정 총리를 현 정부 초대 총리로 추천한 사람도 김 실장이란 소문도 들린다. 정치 이력도 게임이 안 된다. 정 총리는 지난해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반면 김 실장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 내리 3선 의원을 지냈다. 또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화려한 경력과 인맥을 쌓았다. 정치권 안팎에선 권력 실세 중에 김 실장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평가할 정도다. 

무엇보다 김 실장을 향한 박 대통령의 신임도 대단하다.

 김 실장은 박정희정부 때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과 대통령비서실 법률비서관 등을 지내며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실무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멤버 가운데 한 명이 됐다.

박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7인회 멤버들은  김 실장 외에  김용환 상임고문, 새누리당 최병렬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용갑 상임고문, 안병훈 기파랑 대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강창희 국회의장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명박 정부 때 '왕차관'이 있었다면 박근혜정부 들어선 '왕실장'이 새롭게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김 실장은 여러 면에서 정 총리를 능가하는 파워를 갖고 있다. 단순히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역에 머물지 않고 다방면에서 상당한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2인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한편,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말기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지낸 바 있어, 이번에 비서실장을 맡게 됨에 따라 ‘부녀 대통령’을 보좌하게 됐다. 

김 실장은 1992년 대선때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초원복집' 사건을 주도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다른 사람이 되면) 부산·경남 사람들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등으로 지역주의를 촉발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14대 대선을 사흘 앞둔 92년 12월 11일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8명의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당신들이야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해도 괜찮지 뭐….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것이고,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라며 지역감정 조장하는 YS 지지 불법대선운동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던 당사자이다. 

유로저널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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