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참 살맛나지 않는 세상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이 살맛나지 않는 세상인지를 모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그렇고 그런 삶을 살다가 살만큼 살고 나서 죽으면 없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이승, 저 세상을 저승이라고 하는 선조들의 말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습니다. 이승에서는 살아보아서 좀 알 것 같은데 저승에서는 살아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습니다. 저승이 있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살맛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살맛나지 않는 세상인 줄 모릅니다.
이 세상이 살맛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세상에 살지를 못하고 세상을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서 만든 마음세계(사진세계, 허상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세계에 있는 천지만물만상도, ‘나’도 모두 허상입니다. 허상(세상)은 생명이 없습니다. 또한 허상은 허(虛)일 뿐, 실(實)이 없습니다. 허상인 ‘나’가 사는 삶은 허입니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모두 허입니다. 무언가 해서 실의 결과가 있어야 한 것이 있는데 허인 ‘나’가 하는 것은 허이기 때문에 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근저에는 암담함과 허무함이 깔려있습니다.
허상인 ‘나’가 존재한다는 것도, 산다는 것도 다 허이기 때문에 몸의 수명이 다하여 목숨이 끊어지면 그냥 없어지고 맙니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나’도 목숨이 끊어지면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항상 가지고 이루면서 존재하고자 발버둥치고 죽어 없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또 존재하기 위해서 상대와 싸워서 이기려 하고 상대의 존재를 무시할 수밖에 없어 상극(相剋)의 삶을 삽니다.
‘나’의 마음세계는 ‘나’만의 세상이어서 ‘나’가 아는 것은 그 나만의 마음세계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기 마음 세계의 기준과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만의 마음세상을 가지고 자기 세상의 기준 잣대를 가지고 있으니 서로 부딪치고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어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또 ‘나’만의 마음세계에 빠져있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근저에는 항상 고독과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편 ‘나’만의 마음세계는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반면 그 외의 것은 모두 부정적으로 다가옵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천지만물만상이 ‘나’의 마음세계에 맞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