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전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 할머니 강연회 참석기-

by eknews posted Sep 04,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 할머니 강연회 참석기-



올해 상반기에 우리는 심심치 않게 일본 정치인들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망언들을 접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동원된 증거는 없다"고 말한 아베 총리에 이어, "전쟁 중에 위안부가 필요 했었다"는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그리고 일본 스즈키에 의해 자행된 말뚝테러 사건에 우리는 좌절을 했다. 재삼 숙고하고 반성하며 사죄해도 용서를 할 수 있을지 모를 형국에, 후안무치한 그들의 인식과 태도에 우리는 실망과 좌절을 넘어 분노를 했다.


우리를 분노케 했던 이 사건들. 일본정부의 무관심과 천인공노할 행태를 우리뿐만 아니라 이미 전 세계가 알고 있다. 


물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저절로 밝혀진 게 아니다. 일본정부의 이러한 뻔뻔한 행태에 항의시의를 하고, 이들의 보상과 사죄를 요구를 할 수 있게 된 계기는 199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묻혀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의 만행을 세상에 최초로 알린 (故)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그의 증언 후 많은 피해자들이 당시의 아픔과 고통을 참으며 동참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 사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위안부 피해자들 중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들도 이미 고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일본군의 만행과 일본정부의 행태를 알리고, 그 문제를 우리에게 환기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인 강연회가 독일 쾰른에서 개최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 할머니 독일 방문

(Besuch von Lee Ok-Seon - eine der letzten "Trostfrauen" in Deutschland)"


2013년 8월 30일(17:30~19:00) 쾰른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 할머니의 강연회가 '코리아 협의회 (Korea-Verband e.V.)'의 주최로 개최되었다. 강연회는 이옥순 할머니의 증언과 다큐멘터리 상영 그리고 질의응답 순으로 이어졌다. 50여명의 한국인과 독일인들이 참석하여 이번 강연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보여 주었다.


이옥순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에 피해를 받은 현 생존자들 중 한명이다. 8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먼 타국 독일까지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옥순 할머니가 밝혔듯이,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 회복을 위해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와 그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을 때,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이옥순 할머니가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였을 때, 그 내용의 무거움과 슬픔으로 강연회장은 숙연해졌다. 몇몇의 청중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탄식했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영상에서 보여 준 일본군의 만행은, 잔혹과 충격 그 자체였다. 상상할 수 없는 일본군의 인권유린과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참석자들을 경악케 했다.


취업을 미끼로 공부를 시켜준다는 거짓으로 그리고 강제연행 식으로 당시 11세 이상의 꽃다운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다. 하지만 그 어린 소녀들은 목숨을 버릴지언정 결코 일본군에 항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절개를 목숨으로 지켜낸 훌륭한 소녀들이었다. 그러나 상영 내내 드러나는 일본군의 끔찍한 행위로 인해 모두는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상영이 끝난 후 그 어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부산이 고향인 이옥순 할머니는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해방 후에도 2000년도 까지 중국 옌지라는 지방에서 거주하였다. 할머니는 왜 해방 후 2000년도까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의 회고에 따르면,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갔음에도 '위안부'라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을 죄인 취급하는 당시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는 반문하였다.


"그 어느 부모, 친구, 친척이 우리를 반겼겠는가?"


그 낙인은 우리사회가 마치 주홍글씨처럼 그들에게 새겨 넣은 것인 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로해 주고 우리가 대신 나서 강력한 처벌 및 사죄를 요구했던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죄인 취급한 것이다. 역사적 과오 앞에서 머리가 숙여지는 순간이다.


916-김신종 사진 1.JPG


사진) 강연회 참석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영상으로 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당시 관련 사진들과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고, 직접 '위안부'를 관리했던 일본군의 증언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그는 증언했다.



916-김신종 사진 2.JPG


사진) 그는 강연 중간 중간마다 가슴 아파하는 청중들을 향해 

가벼운 농담으로 미소를 보여주시며, 

오히려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는 우리를 위로했다.



"나는 반드시 내 동료들의 피값과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아야겠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일본정부와 달리 일본 내 각종 시민단체에서 '위안부' 피해자 인정 및 집회동참 그리고 자국 정부에 대한 배상 및 사죄 요구시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함께 생각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할머니는 온 힘을 다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해 그 사실을 알릴 거라고 밝혔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지만 그 언행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게 울렸고 왕성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강연회에 참석해서 이옥순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면,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이 얼마나 빈약하고, 그 분들에게 우리의 관심이 얼마나 적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 생생한 역사적 사실 앞에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며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잊혀져야 할 과거는 없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와 공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문제를 과거사로 치부할 게 아니라, 언제나 자각하고 직시하여 풀어내야 한다. 그것은 할머니의 증언처럼 단순히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사죄만이 아니라,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대한민국에, 나아가 전 세계에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진실을 인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이겨낸 자들에 대해서 체감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을 이겨낸 자들과 공감하는 게 소중한 것이다. 


이옥순 할머니는 참석자들에게 이를 깨우쳐 주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미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도 이를 채택하는 등, 이 문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권문제가 되었다. 


다만 일본정부만 그것을 부인하고 왜곡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간차원에서라도(예를 들어 "나눔의 집"이나 "수요시위") 각종 행사와 강연회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갖가지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꾸준히 지속된다면, 일본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여기서 '위안부'라는 표현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는 게 좋겠다. 대한민국 법령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 명시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종군 위안부"라고 사용한다. 


그러나 '위안부'라는 표현에는, '위안부(慰安婦)'라는 글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군을 위해 마치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했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 더욱이 일본정부가 사용하는 '종군'에는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위안부'라는 표현에 '부정적'이고 '강제적인 동원'이라는 의미가 부가될 수 있도록, 작은따옴표('위안부')로 고유명사화해서 표기한다. 이러한 가운데, 1998년 'UN 인권위원회'에서 결의한 표현인 '일본군 성노예'는 국제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현재 국내외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또는 "일본군 성노예"가 공식명칭으로서 통용되고 있다.


이번 강연회 참석하시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강연회 관련 정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 할머니 독일 방문" 일정 및 연락처-

일정 : Darmstadt - Köln - Hamburg - Berlin vom 29.08. - 08.09.2013

문의 : 한정화(NATALY JUNG-HWA HAN), 카이 슈페히트(KAY SPECHT-RHEE),

Korea-Verband e.V. Rostocker Str. 33, 10553 Berlin, (+49-30-3980-5984)

홈페이지 : www.koreaverband.de

 메일주소 : mail@koreaverband.de



독일 유로저널 김신종 기자

  

eurojournal29@eknews.net

유로저널광고

Articles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