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들의 말씀이나 보여준 삶은 ‘나’를 다 놓는 것입니다.
‘나’는 인간마음을 가지고, 내 것을 가지고, 몸이 ‘나’라고 생각하는 물적인 존재입니다.
‘나’가 가진 인간마음은 세상을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놓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실제로 있는 세상과 겹쳐져 있어 사람은 세상에 사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데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고 사진 속에 있습니다. 사진은 허상이고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마음이 ‘가난한 자(’인간마음=망념‘ 이 없는 자)’는 세상에 겹쳐져 있던 사진이 없으므로 세상만 남아 그 세상에 다시 나게 됩니다. 생명 없는 사진세계(망념세상)를 벗어나 생명 있는 세상에 거듭나게 됩니다. 성현들은 인간마음(=망념)을 다 없애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있는 모든 것은 세상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있는 모든 것(세상=우주와 만물만상, 삶=인연과 사연, 배경)을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욕심에 끝이 없어 태어나서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세상 것을 닥치는 대로 사진 찍어 담고 ‘나’의 것을 만들어 ‘나’의 마음세계를 구축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존재케 하는 것이므로 그것에 말도 못할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없애기 위해서는 ‘나’가 집착하는 내 것을 놓아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것들은 세상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처자와 전토를 버리라,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성현들은 실제로 인연과 가진 것을 다 놓았습니다.
다음으로 ‘나’를 다 놓아야 합니다. ‘자기의 십자가(죽음을 상징)를 지고 = 자기를 다 놓고’라는 말 대로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서 보여주었습니다. 성현들은 마지막으로 죽음을 예고하고 죽음의 길을 떠납니다. 죽을 줄 알면서 죽음을 향해서 길을 떠나는 것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나’를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현들은 ‘나’를 일체 다 놓는 삶을 실천으로써 보여주었고 또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하층민을 제자로 삼고 석가는 제자가 되고 싶으면 다 놓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이 계명대로 살았으니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했을 때 가진 것을 이웃에게 다 나누어 주라고 하였고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낼 때 입고 있는 옷 한 벌, 신고 있는 신발 한 켤레, 밥그릇과 지팡이만 들고 아무런 가진 것 없이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먹는 것도 잠잘 곳도 맺은 인연도 다 놓도록 하였습니다.
‘나’가 가진 인간마음이 있어 ‘나’가 있고, ‘나’의 것을 잔뜩 움켜쥐고 놓지 않아서 ‘나’가 있고, 또 그러한 ‘나’가 있어 생명 있는 세상에 살지 못하고 생명 없는 사진 세계(마음세상)에 있습니다. ‘나’가 있어 지혜가 없고 또 지혜가 없어 진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욕심으로 끊임없이 ‘나’의 것을 끌어 모으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색욕, 식욕, 물욕에 사로잡혀(마음에 때가 묻어) 눈귀가 어두워져서 진리를 보지도 못하고 진리에 귀 기울일 줄도 모릅니다. ‘나’의 세상을 따로 가지고 있어 세상과 하나 되어 세상섭리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세상섭리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몸이 ‘나’이어서 사람한평생 살다 죽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