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죄업(罪業)의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멍에를 목에 걸고 고통 짐 지고 사는데 그러한 사람의 삶은 고해(苦海) - 인간이 어찌할 수 없이 빠져서 살아보겠다고 허우적대다가 결국은 죽어 없어지고 마는 - 고통의 바다입니다.
사람이 왜 죄업의 존재일까요? 사람이 죄인인 것은 살면서 오감(五感)으로 세상을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아서 만들어놓은 자기의 마음세계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살지를 않고 자기의 마음세계에 사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배신하고) 반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살면서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 담습니다. 죄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또 마음세계는 허망한 생각(망념)일 뿐인데 사람은 그 망념에 빠져서 미망(迷妄)을 헤매고 있습니다. 살면서 끊임없이 망념(사진)을 더하기하면서 삽니다. 업을 짓고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은 죄업의 존재입니다. 또한 마음세계는 생명이 없어 마음세계에 사는 죄업의 존재는 의식이 죽어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살면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오감으로 찍어서 마음에 담아놓은 사진입니다.
사람은 왜 과오를 되풀이할까요? 오감으로 찍어 마음에 담아놓은 사진에는 희로애락의 감정과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있습니다. 조건이 되면 찍어놓은 사진과 묻어있는 감정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이와 첫눈 오는 날 데이트한 사진이 마음에 담겨있으면 첫눈이 오거나 데이트했던 장소에 가면 사진과 함께 가슴 저미는 아련한 첫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물욕을 채우며 살았던 사진들이 있으면 욕심나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고 찍어놓은 사진에 묻어있는 욕심이 일어나서 그 물건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조건만 되면 온갖 사진(마음)들이 불쑥 일어나서 과오를 되풀이 하게 됩니다. 문제는 살면서 찍어 담은 사진입니다.
사람은 왜 세상 섭리대로 살지 못할까요? 살면서 몸의 욕망을 좇아 살아온 사진을 담고 있는데 조건이 되면 그 사진이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이 있는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탐욕스러운 마음이 있는데 물욕에 초연할 수는 없습니다. 미움이 있어 서로 사랑할 수 없고 또 미움의 끝은 살인입니다. 유혹에 빠지는 것도 몸의 즐거움을 좇아 그것에 탐닉해온 사진이 있어서입니다. 살면서 찍어 담은 사진이 문제입니다.
왜 진리(말씀)를 보지도 듣지도 못할까요? 사람은 진리를 거스르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살면서 찍어놓은 진리를 거역하는 사진을 마음에 가득 담아놓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정적 사진이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서 진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진리(말씀)를 보고도 모르고 듣고도 모릅니다. 모른다는 것조차도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리를 가리고 있는 사진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살면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 마음에 담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삶의 문제도, 존재의 문제도 모두 더하기해온 사진이 문제입니다. 근년에 사진을 빼기하는 방법이 나와 있어 사진을 다 빼고 사진을 찍는 나마저 빼기하면 일체를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나게 됩니다. 문제 있는 존재에서 문제없는 존재로. 즐겁고 행복한 세상, 영원한 참 생명의 세상, 살맛나는 세상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