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랑하기조차 거부한 채 마음의 벽을 쌓고 지낼 때가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의 벽은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많이 쌓이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렇게 가까운 관계이고 사랑하는 관계인 만큼, 상대방에게 실망하거나 원망하게 되는 감정의
골 역시 더욱 깊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 수요일(18일)
일 년에 고작 두 번, 추석과 설날에만 전화를 드려서 간단히 안부 인사만 드리는 나로서는 그저 죄송할
따름인데, 할아버지께서는 연신 전화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요즘에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독한 술(양주나 안동소주)은
못 드시고, 맥주 정도만 간신히 드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건강하실 때 제가 술도 좀 따라드리고 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와 불과 1~2분 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이 몇 마디 안 되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어찌나 울컥하던지,
안 그래도 할아버지와 통화하기 전에도 마음이 너무 아픈 상태였기에, 이래저래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잠자리에 들기 어려울 것 같아서 결국 나는 다음 날 출근을 앞두고도 새벽 늦은 시간까지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사실, 나는 사리분별이 어느정도 가능해지기 시작한 청소년 시절부터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솔직히는 할아버지를 싫어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할아버지를 뵈도 그저 형식적일 뿐이었다.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원망도 많이 했다. 사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잘못하신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늘 용돈도 많이 주시고,
참 잘 해주셨다. 그럼에도 왜 그 때는 그렇게 마음의 벽이 쌓여만 갔는지...
할아버지는 매사에 철저하고 정확한 시계 같은 분이셨다.
우리 전씨 집안은 집안 대대로 술을 참 좋아했고, 할아버지도 매 식사 때마다 반주로 독한 술을 한 잔씩 드셨는데(심지어 아침 식사 때도), 정말 딱 한 잔씩만 드셨고 음식도 소식하셨다.
절제 없이 과음을 하면 알콜중독이 되고 몸이 망가지지만, 수십 년을 그렇게 철저히 절제하시면서 술을
즐기신 할아버지께는 그야말로 약주였던 셈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늘 정해진 시간에 식사, 후식, 산책을 하셨다. 하루 일과를 마치 기계처럼 정확히
관리하셨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해보니 할아버지의 그런 시계 같고 지독하리만치
철저한 면이 할아버지가 몸 담으셨던 은행권과 잘 맞았고,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나는 할아버지의 그런 시계 같은 철저함과 절제를 닮지 못했다. 나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충동을 잘 절제하지 못하며, 기분을 따라 막 나가는 경향이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철저함과 절제 덕분에 고령이 되셔서도 나름대로 건강을 잘 유지해오셨는데, 그래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그렇게 평생 좋아하셨던 술도 이제는 예전처럼 드시기가 어려워져서 겨우(?)
맥주 몇 모금만 드시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술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와 제대로 술 한 잔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너무나 아쉽고 후회된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막 이해되고 좋아진 것은 아닌데도, 까닭 모를 그 무엇이 지난 시절 할아버지를 원망하고 싫어했던
내 마음의 벽을 허물었고, 오히려 할아버지를 향해 애틋한 마음이 들도록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작 할아버지께서 술을 잘 못 드시고 내가 영국에서 살다보니, 할아버지께 술 한 잔 따라드리기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려워졌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눈 녹듯 허물어질 그 부질없는 마음의 벽으로 인해 지난 세월을 야속하게
흘려보낸 셈이다.
해바라기의 노래 ‘어서 말을 해’의 가사 “미워하면 무슨 소용 있나, 가고 나면 후회할 것을”처럼,
결국은 세월이 흐르면 좀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해서, 그 사람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실망시킨다는 이유로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간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인데, 비록 나의 기준에는 실망스럽고 원망스러울 지라도 그저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주고 격려해주면서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는 것인데...
정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결국 그 마음의 벽은 세월이 흐르면 허물어지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그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랑만 하면서 지내기에도 너무나 짧은 인생인데,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지 않으면 너무나
외롭고 고단한 세상살이인데...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