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1983년 6월30일 밤 10시15분. 한국방송공사의 ‘특별생방송,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는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가
장 특별한 기록을 남겼다. 당초 예정된 2시간에 2시간30분이나 더 보태 연장 방송을 하고, 시청률은 80%를 웃돌았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실상 대한민국에 있는 방송수신 가능한 모든 TV 10대 중 8대는 모두 이 프로그램을 틀
고 있었다는 얘기다. 전 국민이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치다.
이 방송은 그해 11월14일까지 총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총 10만952건의 신청건수
가 접수돼 1만180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방송에 출연한 사람만 5만3536명에 이르렀다.
한국방송공사 사옥 주변은 가족을 찾아헤매는 남녀노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후 이런 열기를 바탕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이산가족 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에 관한 합의서’를 바탕으로 분단 이후 처음 성사됐다. 남측에서 35가족, 북측에서 30가족이 ‘고향방문단’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평양과 서울을 방문하는 식으로 상봉했다. 꿈에 그리던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딸을 만났다. 온 나라가 눈물 바다를 이뤘다.
이후 15년 동안 이뤄지지 않다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15공동선언으로 본격화됐다. 2000년 8월 1차 행사를 시작으로 2008년을 제외하면 2010년 18차 상봉까지 해마다 1∼2번씩 열렸다. 3차까지는 양측 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 방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4차부터 18차까지는 금강산에서 상봉했다.
상봉 규모는 양측에서 200명씩 나온 14차 행사를 제외하면 모두 100명씩에 그쳤다. 이를 통해 남북에서 모두 3천829
가족, 1만8천143명이 상봉했다. 2005년에는 화상상봉센터가 문을 열어 같은 해 8월부터 2007년까지 7차례에 걸쳐
557가족, 3천748명이 영상을 통해 혈육의 정을 나눴다.
그러다 남북 관계 악화로 2010년 10월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개성공단 정상화 등 북한의 유화 제스처로 인해 3년여만에 재개 예정이던 이산가족 상봉이 행사를 나흘 앞둔 21일 북한의 일방적인 연기로 무산됐다. 상봉을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있고, 정부도 ‘반인륜적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산가족 상봉 무산이 가슴 아픈 것은 그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1세대는 분단 후 6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혈육과 재회하지 못한 채 해마다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산가족 1세대가 거의 세상을 뜨게 되면 다음 정부에선 이산가족 문제가 논의조차 안될 수도 있다. 더 늦기전에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 현안 중에서 가장 연성적인 주제로서 다음과 같은 원칙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
우선, 가능한 한 단기에 많은 인원이 상봉에 나서야 한다.
1988년부터 등록돼 있는 이산가족 12만8842명 중 7만2882명이 생존해 있고 평균적으로 고령화에 따른 사망으로 매년
2000명씩 줄어들고 있다. 상봉 문제는 현실적으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형식과 격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유연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서울과 평양 등 최근 상봉 장소를 둘러싼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고 있으나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개성공단 합의서 도출과 같이 향후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추석맞이 또는 설이라는 이벤트 성격에 따른 일과성 행사에 그쳐선 안된다. 연중 상시 상봉이라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만남만 성사된다면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동·서독 이산가족 상봉이 비교적 상시적으로 내실 있게 조용히 진행됐다는 것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상봉의 이면에는 남북 당국 간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정치적 변수는 물밑에서 관리하고 상봉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산가족 상봉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실질적인 일보를 내딛는 함의를 가진다.
개성공단은 현 정부 들어 북측이 자의적으로 문을 닫고 열었다. 반면 이산가족 상봉은 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측에 공식 제안한 것을 계기로 3년 만에 성사되는 성과다.
임기 중 다양한 남북 현안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실질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인적 만남은 통일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 <관련 기사 : 4 면 정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