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들어서도 이상하리만치 따뜻했건만 정확히 8일까지였고,
9일 아침부터 입김이 날 만큼 갑작스런 찬바람이 찾아왔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갑작스럽지만, 올해는 유난히 덥고 긴
여름을 보낸 터라 순식간에 찾아온 찬바람이 더욱 갑작스러운 것 같다.
퇴근 후 차를 운전해서 헬스클럽에 다녀오는데, 집에서 차를 주차한 곳도 가깝고 헬스클럽 주차장도 헬스클럽에서 가까워서 운동할 복장 그대로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간다.
9일 저녁에도 그렇게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주차된 곳까지 걸어가는데 하필 이날 따라 주차를
조금 먼 곳에 해놓았고, 어지간해서는 추위를 잘 안 타는 나조차 순식간에 몸이 떨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거의 겨울 복장이고, 반바지에 반팔 차림인 내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혹은 불쌍하다는 듯 흘끔 쳐다보기까지 한다.
내리쬐는 햇살과 숨막히는 더위에 헉헉대던 여름날이 엊그제 같은데, 그 여름은 어느새 온데 간데 없고 언제 이렇게 계절이 바뀐 것일까? 나는 아직 이렇게 찬바람을
맞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갑작스럽게만 느껴지는 찬바람은 비단 계절의 변화에서만 찾아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살다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찾아오는 고난, 혹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깨닫게 되는 나이듦이 바로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인생의 찬바람이 아닐까?
따스한 여름날에는 마치 그러한 따스함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아쉽게도 때가 되면 계절은 변해야 하고 찬바람이 불어오기 마련이다.
살아가면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우리는 마치 그것들을 영원히 누릴 수 있을 듯 여기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고, 당연히 계속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어려움이나 불행이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여기고 살아간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런 인생의 찬바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건강하다고 건강을 과신하는 사람이 오히려 한 순간에 큰 병에 걸리고, 오늘 하루 나의 수입이 넉넉하다고 그 수입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소비하는 사람이 오히려 한 순간에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찬 바람처럼, 나의 건강도,
나의 돈도, 비록 오늘 하루 걱정할 것 없고 오늘 하루 넉넉해도, 불과 내일 당장 그 건강이 돌이킬 수 없이 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나의 수입도 급격히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한창 잘 나갔던 연예인이나 혹은 스포츠 스타가 어느 날 극심한 가난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잘 나갈 때 저축 좀 해놓지 뭐 했나 하는 의아함을 갖는다.
그러나, 이는 비단 한 때 돈을 엄청 많이 번 유명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그렇게 한 순간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현재의 수입이 영원할 것처럼 우리의 소득 수준 내에서 나름대로 저축보다는 소비에 치중하면서
지내곤 한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져서 수입이 줄거나 심지어
실직을 하게 될 경우 무방비 상태에서 인생의 찬바람을 맞는 경우가 있다.
따스한 햇살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지만 피할 수 없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어느새 찾아오는 찬바람처럼
우리의 나이듦 또한 그렇게 갑작스러운 것 같다.
우리는 어렸을 적에 마치 어른은 처음부터 어른이었고, 또 우리가 어른이 되고나서부터는 노인은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것처럼 여기곤 한다.
바로 내가 그렇게 어른이 되고, 바로 내가 그렇게 노인이 된다는 것을
삶 속에서 깊이 실감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적에는 어리석을 정도로 젊음을 낭비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엾을 정도로 늙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슬퍼한다.
그나마 계절은 그렇게 가을과 겨울이 지나면 다시 따스한 봄과 여름이 찾아오지만, 우리네 인생에서는 한 번 지나간 계절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마지막 종착지인 겨울을 향해 다가갈 뿐이다.
어느 누구도 늙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없고, 노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순간 돌아보면 세월은 벌써 체감할 수 없을 만큼 훌쩍 흘러버렸고,
인생의 가을과 겨울 역시 그렇게 갑작스레 가까이 다가와 있을 뿐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찬바람에 가슴이 서늘해지고 마음이 서글퍼질 수도 있지만, 그 찬바람과 떨어지는 낙엽 또한 이 계절에만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니,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의 20대 시절의 청춘과 젊음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지나가 버렸음이
아쉽지만, 또 지금 30대 중반의 이 시절에만 만끽할 수 있는 인생의
아름다움과 행복에 감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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