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나 군의 댓글은 대북 심리전이 아닌 대국민 사기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일부 대기업 정규직과 함께 청년세대에겐 선망의 직종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행정고시를 거쳐 탄생하는 고위공무원을 제외한다면, 9급시험이나 7급시험은 십 년 전만 해도 별다른 야심 없이 소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선택지였고 일부에선 시시한 직업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공무원이 선망의 직종이 된 건 그들의 처우가 좋아져서라기 보다는 그 바깥 세상이 워낙에 험악해져서인 측면이 크다. 그들은 '노아의 방주'에 올라탔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방주 안도 갑갑하고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행정고시를 통과한 5급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행시 합격자들이 교육기간 중에 마치 군인처럼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것'이란 요지의 정신교육을 받는다는 전언을 들으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향후 인생을 생각하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은 월급'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대체로 과도한 업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자조도 오랜 말이긴 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된 시대에 그들은 내면을 더 철저하게 통제당해야만 한다.
국정원 선거개입 및 정치개입 의혹 관련 청문회를 보면서 종종 일반 공무원들보다는 훨씬 삶의 형편이 나을 그들의 처지에 동정이 갔다. 새누리당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댓글을 '직원 개인의 정치적인 의사 표현'으로도 옹호했고 '국정원 통상 업무인 대북심리전'이라고도 옹호했다.
사실 두 개의 관점은 양립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이 양립할 수 없는 견해를 당연시할 수 있는 정서의 핵심에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상이 있다. 그들의 생각에는 공무원의 사적인 의사표현은 마땅히 상사의 의중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일 게다.
전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공무원들이 업무상 정치적 편향성을 발휘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업무 이외의 시간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허용해야 하고, 그들이 노동조합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정당에 가입해서 당비를 납부하는 일에도 자유로워야 한다.
물론 한국 사회에선 이러한 '정치적 자유'가 편향적으로 보장된다.
교사든 공무원이든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진보정당에 당비를 납부한다면 자신의 안정적인 '밥그릇'을 걷어차일 각오를 해야 한다. 직업군인이 대통령을 비난하다간 그걸 본 누리꾼이 빡쳐서 신고를 하고 수사를 당하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교장 교감이 새누리당에 후원금을 납부하거나 경찰공무원이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수사 결과를 왜곡하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편향적으로 보장되는 자유 중 부당한 것들은 시정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국정원이나 군의 댓글의 문제는 그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공무원들이 기관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댓글을 다는 것도 내면을 통제당하는 일일 것이나, 이번 문제는 공무원이 아닌 일반 시민의 의견인 척 특정 정치성향을 표출함으로써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국민여론을 날조한 일이다. 북한이 아닌 시민을 향한 '심리전'이었고 정확히 말하면 사기극이다. 이름을 감추고 썼고 모든 자료를 제출하지도 않았으며 상당 부분 지웠기 때문에 내용조차 정확히 모른다.
정황과 수준을 보면 정부 정책 비판하면 모조리 종북이고 호남이라고 달았을 태세인데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검증도 못 했다.
하지만 그것도 업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종북세력'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해 제 신분을 속이고 남을 비난하는 댓글이 더 권장되어야 한다는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에 대해 뭐라 할 것인가.
게시판에서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말을 보면 '알바냐'라고 묻는 게 지금까지의 어법이었다면, 앞으로는 '알바냐'대신 '공무원이냐'라고 묻는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른단 생각에 서글프다.
조화와 융합을 관리하는 민주적리더십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고있는 두 사건, 동양그룹의 법정관리신청과 SK 사주일가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동양네트웍스의 김철 대표(38)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52)이다.
동양그룹과 SK의 위기 뒤에 ‘숨은 실력자’가 있다는 소문의 당사자다. 두 사람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비선라인에서 움직였지만 ‘3세들의 멘토’ ‘묻지마 회장님’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만큼은 절대적이었다.
이력이 불분명한 것도 비슷하다. 김철 대표에 대해 드러난 것은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졸업은 하지 않았고, 한 신문사 주최 행사에서 디자인에 관심 많은 이혜경 부회장을 만났다는 정도다.
김원홍씨는 경주 출신으로 증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했고 이후 무속인으로 변신한 경력이 이채롭다.
학·경력이 부족한 두 사람이 재벌그룹의 넘치는 인재들을 제치고 오너의 후광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것도 잠시, 거듭된 오판과 잘못된 투자로 그룹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내부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닮았다.
궁금한 게 있었다.
최태원, 최재원, 현재현, 이혜경, 이들이 누구인가.
한때 재계 3위, 5위 기업의 대주주이고, 내로라하는 유명대학을 졸업한 최고의 엘리트들이 아닌가.
이들이 어떻게 ‘무속인’이나 이력이 불분명한 사람들에게 휘둘렸을까.
일부 심리학자들은 ‘확증 편향’과 ‘선택 지원 편향’에서 원인을 찾는다. 자신이 믿고 있던 것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고, 반대의 정보는 피하려고 노력하는 심리학적 오류다. ‘보고 싶은 것만 보자’는 심리다.
수천억원을 잃어도 최태원 회장이 김씨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뒤늦게 최 회장이 “뭐에 홀렸던 것 같다”고 한탄했지만.확증 편향에 사로잡히면 감정적 논리에 따라 현실인식이
이뤄지고 이성적·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상대의 문제점만 찾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우리 사회 곳곳에도 확증편향의 폐해가 도사리고 있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여론은 두 갈래로 쫙 갈린다.
무엇이 사실인지 찾기보다는 일단 보수와 진보로 편이 나뉜다. 이후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리고 무조건 우기고 본다. 토론이 될 리 없다.
온갖 궤변만 난무한다. 사회 지도층이 이렇다보니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같은 현상이 널리 퍼졌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은 법과 원칙조차 무시하게 만든다.
지독한 당파성이 우리 사회 뿌리까지 번졌지만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작다.
보수든 진보든 이념의 본래 가치는 훌륭한 것일진대, 패거리 싸움판이 되다보니 진정한 이념의 가치는 훼손되고 있다.
이념 과잉 속에 이념 가치가 실종된 셈이다.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보수적, 진보적인 사람의 뇌구조를 연구했는데 서로 조금 달랐다고 한다. 뇌 특정부위의 발달정도가 다르고, 같은
이슈에 활성화되는 뇌 부위도 달랐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이념적으로 서로 다른 뇌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과제라는 의미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짓뭉개는 ‘All or Nothing’게임을 하지말라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상호보완적 기능을 살려나가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 속의 조화와 융합을 관리하는 공존의 리더십이 민주적리더십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다.
이념을 앞세워 집단의 명운을 건 싸움판을 벌이면 결국 모두가 이념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