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가을운동회날
'우천시에는 학교에서 정상수업을 합니다' 운동회를 알릴때면 언제나 따라 다니는 후렴구이다. 금요일 밤에 비가 내려도 다음 날 잔디밭에 앉을 수 없으니 난처하긴 합니다 .....
정원에 나가 밤하늘을 몇 차례 바라 보았다. 별빛이 선명하지 않으니 아침이 맑다고 장담을 할 수는 없는 터였다. 이 즈음에는 전화, sms, 이-메일, 카카오톡 등으로 신속하게 연락이 가능하니 언제든지 결정만 확실히 하면 실제생활에 큰 차질이 없게 되었다. 그 대신 고요한 안정감이 줄어 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리라. 외부와의 연락망에 거미줄처럼 연계되어 있지 않으면 개인주의로 몰리기도 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 또한 종종 보게 된다.
리크레이션 자격증을 가지신 송세진 후보교사님이 운동회의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셨다. 몇가지 운동회 경기에 필요한 물품을 사러 쇼핑센타에 갔다 ''하리보를 큰 공룡으로 할까요, 개구리로 아님 쥐로. 그냥 곰으로?" "작은 곰으로요!'' 카카오톡은 이런 때 유용한 것이리라. 줄넘기는 늘 흔하게 아무데서나 살 수 있으려니 했는데 무얼 믿고 그런 황당한 생각을 했는지.....
70년대 어두컴컴한 문방구에는 아기 기저귀를 고정시키는 누런 고무줄과 속옷에 끼우는 검은 고무줄 그리고 먼지가 적당히 묻어 더러워진 줄넘기도 합세하여 금방 분리 할 수 없는 카오스로, 그 풍경이 아직도 내 속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이 허리에 둘러싸인 중후한 산이 네카강 너머로 보이고 사랑에 빠지는 하이델베르크의 날씨가 펼쳐졌다. 드디어 잔디밭에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 했다. 돗자리를 펴자마자 만으로 네살인 병아리반의 마루는 배가 고파서 뭐든 먹어야겠다고 중심부에 턱 하니 자릴 잡았다. ''아니, 지금 먹으러 온거야? 우선 운동을 해야지!'' ''안 돼! 난 먹을꺼야.'' ''그럼 모두들 모이기 전에 얼른 주시구려.....'' 아침 열시에 오자마자 김미영씨는 김밥을 열고 커피를 꺼낸다. 리듬에 맞지 않지만 아들 덕분에 풀썩 앉아서 네카강을 바라보며 눈치밥을 드신다.
드디어 여기저기 교실안에서만 보던 얼굴을 처음으로 들판에서 부딪치는 즐거운 햇살과 더불어 새롭게 마주한다. 지난 6월말에 분만을 하신 유아반의 경수영선생님께선 남편인 이준원 선생님과 함께 천천히 유모차를 끌고 오셨다. 아기를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니 운동회의 귀한 손님이 아닐 수 없다. 잠시후에는 지난 7월에 학교를 그만두신 토끼반을 담당하셨던 김지영 선생님께서 가족과 함께 오셨다. 지금이라도 둘째 자녀가 세상에 나올 듯이 배가 많이 커지셨다. 하이델베르크한글학교에서 교사를 하면 금방 가족이 많아진다는 전설이 생기고 있다고 모두 웃었다.
평소에 학부모와 학생 들이 서로 이름을 잘 알고 있지 않은지라 이름을 크게 써서 가슴에 붙이기로 하였다. 푸게 길우는 이름 위에 얇은 잠바를 입어 이름을 보이지 않게 하는 반면에 슈티너 세바스티안은 직접 와서 명찰을 하겠노라고 신청을 하였다. 개성이 모두 강렬하게 드러났다.
뒷짐을 지고 집게로 고정시킨 과자 따먹기 경기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줄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과자를 따기가 어렵게 되자 병아리반의 백승윤은 불끈 화가 나서 울 지경이 되었으므로 손으로 따서 주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김예주와 조민서는 병아리반에 활력을 불어 넣는 주인공들이다.
모든 경기에 성심성의를 다해 애교를 부리면서 평소에 훈련이라도 받은 양 잘 해낸다. 잠시 후에 갑자기 옆에 있는 놀이터로 주루륵 달려가서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운동회의 백미는 줄다리기가 아닐까 한다. 두 집단으로 나누어 차분히 시작을 하면서 협동심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걸 깨닫는다. 학생과 교사가 한 그룹이 되어 학부모와 대항하는 줄다리기 경기가 시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중간에서 심판 겸 총 지휘를 하시는 리나의 아버님, 김도형씨께서 갑자기 학부모 쪽으로 오시더니 두손으로 소리를 모아 작게 말씀하신다.
'' 상대편은 어린 학생이 대다수라 학부모님이 젖 먹던 힘을 살짝 빼주세요!" "자! ~ 좌우로 줄을 맞추고, 됐으면 일단 앉으세요. 이제 일어 나세요! 아직 어~~ 힘을 주시면 안됩니다. 제가 '하나, 둘, 셋 !' 하면 시작입니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나가는 통제불능의 상태를 아무 때나 경험할 수 있는게 아니다 잘못 하다간 우리 팀 모두 저 네카강으로 힘차게 대동댕이 쳐질 수가 있으리라. 학부모는 힘도 써보지 못한채 끌려 갔다. 피아노를 하시는 데니스의 어머님 황은숙씨는 손바닥이 많이 아프시다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셨다.
''엄마 나-- 이겼다아!'' 기쁨에 넘치는 한별이가 엄마 품으로 달려 들었다. 운동회는 모름지기 즐거워야 할 일이다.
(자료제공: 김인옥)
독일 유로저널 오애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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