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교도 잘못된 사실의 비판에 동참 가능하다

by eknews posted Nov 2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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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교도 잘못된 사실의 비판에 동참 가능하다




1971년 성탄 자정미사. 전국 곳곳의 라디오에 김수환 추기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추기경의 강론이 이어지자 박정희 정권은 생중계를 중단시켰다. 

천주교 사회 참여의 시발이다. 김 추기경은 이후 본격적인 유신 반대에 나선다.

이듬해엔 '현 시국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했고 1974년엔 지학순 주교가 체포되자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특히 이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제1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민주제도는 정치 질서에 있어서 국가 공동체가 그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치 제도임을 우리는 
믿는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 그의 생존권리, 기본권을 선포하고 일깨우고 수호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누구이든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면서 유린당한 그의 권리를 회복해 주기 위하여, 그를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1976년 3·1절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재야인사들이 구속되자 다시 구국기도회를 가졌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도 이 무렵. 천주교계는 양심수 석방, 유신헌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시국미사를 잇따라 열었다. 

1987년 6·10 때도 마찬가지.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폭로하자 나라가 요동쳤다. 

전두환 정권이 농성 중인 학생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경찰력을 명동성당으로 강제진입시키려 하자 김 추기경이
"나부터 잡아가고 내 뒤의 신부 수녀들부터 잡아가라"고 일갈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지난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신자 등 400여명이 참석해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드렸다. 

사제단이 불법 대선 개입을 문제 삼아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박창신 원로
신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한데 이어,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을 언급했다.

그런데 청와대나 언론들 모두 이 시국미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쏙 빼놓고 종북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 

물론 박창신 원로신부의 모든 주장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민주당도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사제단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사건을 강조하다가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이 함께 언급됐다고 해명했다.

반면 대통령의 사퇴문제가 거론된 것은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과 경제파탄의 책임"을 물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한때 직무가 정지되기도 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사건을 지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민주주의운동사에서 천주교의 기여를 빠트릴 수는 없다. 

그 주요 수단이 시국미사였던 것. 종교인이 현실 정치에 나서는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탐탁찮은 시선을 
던지는 이도 있긴 하다. 어쨌거나 천주교의 사회 참여는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제정된 사목헌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하고 인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선언했던 것. 

구약성경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억압받던 이스라엘 민족들을 해방시킨 것 역시 정의의 하느님이었고, 신약성경의 예수 
또한 당시 유다사회에서 소외받고 무시당했던 이들에 대한 공개적이고 지속적인 사회정의를 확연히 드러낸 바 있다. 

이른바 정교분리는 사실 하나의 종교에 편향된 정치적 개입을 막고, 종교적 차별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예방히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누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잘못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비판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정교분리’의 올바른 해석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불법적 선거개입에 대한 비판은 개신교계와 불교계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할 때다.

<관련 기사 :  유로저널 정치 뉴스 >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시국 선언 발표
朴대통령 스스로 대통령 아님을 인정하고 사퇴하라
개신교·불교도 '시국 기도'로 확산되면서 민주화 이후 첫‘정·교 충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내년 1월 총회에서 하야 요구 잠정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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