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요무대와 이미자 독일공연 회상기*
금년은 한 독 수교 130주년, 파독 광부 5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독일 교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으로 KBS는 8월 3일 보흠에서 가요무대를 공연했고 MBC는 10월 26일 프랑크프르트에서 구텐 탁 이미자공연이 개최되었다.
푸른 여름이 다 타면 황금빛 가을이 된다. 나는 2013년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두 공연의 깊은 감동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가요무대가 1, 2부에 걸쳐 특별 공연한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그 깊은 배려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현장감이 부족한 프로 편성으로 밋밋한 부분이 있었고 전형적인 가요무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요무대는 70년대 통기타 세대의 불모지이다. 그들도 환갑을 넘은 나이인지라 그 시절도 끌어드려야 한다. 통고무신 검정치마 시대의 노래가 주류이어서 경로당 노래잔치로 맴돈다. 민요도 이따금씩 자랑해야 한다.
구텐 탁 이미자공연은 그 이름 값으로 벌써 대 박 깜이었다. 그는 공연에 앞서 국내 언론들과의 많은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열의를 다짐했다. 요즈음 무대활동이 뜸한 편이지만 이번 공연에서의 열정은 가히 국민가수의 으뜸이었다. 74세의 나이를 무색한 그의 노래의 힘은 공연장을 내내 뜨겁게 달구었다. 그가 교민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었다. 구텐 탁 그리고 이미자 공연의 표현됨이 정갈하다.
자기 노래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교민들이 좋아할 노래를 챙겨 합창으로 유도했다. 꿈에 본 내 고향, 울고 넘는 박 달 재, 고향 역 등등이었다. 나는 이번 공연을 통해 그와 애인 같은 친구가 된듯하다. 공연이 파할 즈음 무대 영상에 꽉 찬 태극기가 떠오를 때 나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교민 여러분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것은 태극기의 우렁찬 함성이었다.
일반 공연 장에서 뜻하지 않게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무대의 절정 감 이었다. 나는 목이 메어 멈추듯 막히듯 애국가를 불렀다. 아주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는 1959년 열 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래 50여 년 동안 지금까지 2000 여 곡을 불러 가요사의 전설이 됐다.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일본 영국을 제쳐두고 독일 교민을 위해 한 걸음에 달려와 공연해 준 그에게 무슨 말로 다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찬조 출연한 조영남의 객기도 대단했다. 어눌한 듯한 말 솜씨에 너스레 떨면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미자나 조영남의 경우 미국 교민들을 위한 공연 같으면 A 급 좌석이 200 여 불에 달한다. 가요무대에서 구텐 탁 공연에서 힘껏 노래한 모든 가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친구가 애꾸이면 그의 성한 옆 모습을 봐 줘야 한다. 얼굴에 흉터가 있으면 옆 얼굴을 봐야 한다. 우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이끌어준 그들에게 개인적 흠이 있다고 해도 애써 들출 일 없다. 그늘에서 나무라주고 남들에게는 칭찬해줘야 한다. 무대에서의 환희로 마감해야 한다.
나는 두 공연의 녹화방송을 보고 또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누라 어깨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눈물이 많아졌다. 이집트 나일강 가의 농부들은 강물을 길러 올리면서 부르는 두레질 노래가 있다. 이집트 역사가 시작된 이래 5천 여 년 동안 아직까지 불러진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일 것 같다.
노래는 감성의 언어이다. 노래는 소리의 즐거움이다. 질박한 삶을 이어가는 많은 이들에게 노래로 얻는 힘은 무궁하다. 강물은 흘러가지만 추억은 되돌아 본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추억은 지나간 세월을 찾을 수 있다. 독일 교민들을 위한 공연장은 항상 그들의 뜨거운 눈물로 적셔진다.
그 힘든 시절 그 푸르던 세월에 타국에서의 삶의 애환이 선뜻 선뜻 몰려와 노래는 눈물이 된다. 같이 따라 부르다가 가슴이 일렁거린다. 독일교민사회는 서로가 엇비슷한 동고동락의 사연을 담고 있어 이심전심의 정서를 깔고 산다. 내가 왕년에…`따위의 뻥은 통하지 않는다. 그만 그만한 나이에 독일 왔기에 왕년을 따질 시간이 너무 짧다. 작업이 끝나 공동 목욕탕에서 새까만 등줄기를 서로 닦아주며 저녁에는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눴다.
형제 같은 생활에 서로 숨기거나 우시될 게 없는 그런 사이이다. 기쁨과 슬픔의 자리에 항상 함께한 교민들이기에 공연장에서는 한 마음이 되어 회포를 푼다. 같이 운다. 서로의 위안이 되고 힘을 보태준다. 교민 1세들의 세월을 잘 아는 2세들은 또 다른 교민사회의 큰 동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류가 굳이 고국에서 시작하라는 법은 없다. 나는 2세들의 힘을 믿는다. 이제 12월에 접어들었다. 스산한 찬바람에 옷깃을 여밀 면 전봇대는 추위에 잉잉거린다. 겨울은 내면 세계를 키우고 다지는 계절이다. 겨울은 모든 게 떠오르며 그리워 지는 계절이다. 커피 물 끓은 소리를 또렷이 듣고 커피 향이 온 방안에 다 퍼지는 계절이다.
겨울의 나이테는 여름 것 보다 더 진하다. 한 해를 돌이켜 보며 새해를 맞이하는 한 겨울에 모름지기 서로는 인생의 크고 굵은 나이테를 만들어 가면 참 좋겠다. 그 나이테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값진 유산이기도 하다. 아! 그것은 나의 모습이요 생의 자취인 것을….
<독자 기고 : 독일에서 손병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