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서임받으신 염수정 추기경께 바라는 마음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 가는 성직이다. 추기경에서 추기(樞機)라는 말은 중추가 되는 기관을 말하며, 경(卿)은 높은 벼슬에 대한 경칭이다. 그레고리오 대교황(590∼604년) 때 교회법 용어로 채택됐다.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공개 추기경회의를 열어 서임장을 낭독해 새 추기경을 서임하면, 새 추기경은 신앙 고백과 교회에 대한 충성 서약 등을 한다. 교황은 새 추기경에게 추기경의 고귀한 품위를 표상하는 붉은 모자를 씌워준다. 다음날 교황은 새 추기경과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하며 이때 추기경 반지를 수여한다.
추기경의 신분상 지위는 종신직이다. 하지만 80세가 되면 법률상 자동적으로 교황 선거권을 비롯한 모든 직무가 끝난다. 현재 전 세계 추기경의 수는 218명이다.
중세 이후 추기경의 지위는 갈수록 강화돼 근대 초기까지 추기경들의 업무는 종교를 벗어나 정치·문화·군사 등으로 넓어졌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울지와 리슐리외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유명한 추기경일 것이다. 영국 헨리 8세의 첫 총리로 부임한 울지는 대법관까지 겸하면서 ‘또 다른 왕’으로 불릴 만큼 권력을 누렸다. 높은 지성과 유럽 외교무대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리슐리외는 루이 13세 시대 추기경이자 프랑스의 총리를 맡았다. 그의 일생은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확고히 하는 한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도권을 저지하는데 모아졌다. 교황청과 알력을 빚기도 했으나, 프랑스학술원을 설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의 활발한 대외 선교 정책은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기여했다. 울지나 리슐리외는 세속적 권력을 얻으면서 유명해진 경우다.
1970년대 엘살바도르 독재 정권에 가톨릭교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군부는 “신부를 죽여 애국하자”는 구호까지 내걸었다.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은 80년 3월 미사 강론 도중 살해당했다. 그의 강론은 엘살바도르 민중에게 복음이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요구합니다. 그리고 명령합니다. 제발 탄압하지 마시오.” 로메로 추기경은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한 가톨릭교회의 상징적 인물로 각인됐다.
카톨릭이 세상의 희망이 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무래도 칠레의 경우일 것이다. 1973년 9월 11일,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아옌데 대통령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두 대의 전투기로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탱크로 대통령궁을 둘러싸 일주일 동안 아옌데 대통령을 포함해 3만여 명을 죽였다. ‘좌파’라는 의심이 가면 그 누구라도 끝까지 추적해 모두 구속하거나 살해했다. 그에게 저항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려 들었다. 재판이나 합법적인 절차도 없었다. 그때 연행된 사람만 10만 명, 현재도 수천 명은 행방불명 상태이다. 무시무시한 공포의 피노체트 앞에 나서서 저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 캄캄한 암흑천지에 조용히 저항의 촛불을 켠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톨릭 사제들이었다. 당시 칠레의 추기경이었던 라울 실바 추기경은 사제들에게 ‘그대들이 나서서 죽어가는 국민들을 보호하라’고 말했다. 사제들은 조용히 거리로 나섰다.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죽어가는 평신도 옆에서 함께했다. 그리고 그들은 멍들고 상처를 입었다.
공포정치와 죽음의 정권이었던 피노체트 시절, 사제들은 칠레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국민 앞에 서 있었다. 가톨릭 사제들로부터 시작된 칠레 민중의 저항은 드디어 17년 만에 체노피트 정권을 끌어내렸다. 현지 프리랜서 기자인 살바도르 씨는 “만약 사제들이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교회 안에서 거룩한 미사만 드렸다면 칠레 국민이 간절히 원하던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염수정 서울대교구 교구장이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종교계에 숱한 성직이 있지만 가톨릭교회 추기경만큼 기다려온 성직도 드물다. 종교를 넘어서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추기경 임명은 한국 가톨릭의 존재감과 위상이 반영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 아시아와 세계 교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해 달라는 요청과 기대가 담겨있다는 관측이다.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위하고, 낮은 곳을 지향하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뜻에 따라 한국 가톨릭이 새 추기경과 함께 교회 본연의 역할과 사명에 더욱 충실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