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우리나라 기자의 프랑스 와인 기행>
보졸레 누보, 그 파티와 잔치.
Beaujolais nouveau est arrive ! 보졸레 누보가 왔다!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에서 보졸레 누보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와인 가게와 카페, 맥주 바, 식당 곳곳에 위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고, 뉴스와 신문에서도 연신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와인은 몰라도 보졸레 누보는 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대체 보졸레 누보가 뭐길래 그러는가?
보졸레 누보를 간단히 말하자면, 프랑스 부르고뉴 남쪽 보졸레(Beaujolais) 지역에서 그 해에 수확된 갸메(gamay)라는 포도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양조 과정 중에서 일부를 생략하고 빠르게 만들어 마시는 “햇와인”을 말하며,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전 세계에 동시 출시된다.
그렇다 보니 보졸레 누보는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켜서 마실 수 있는 고급 와인이 아니라, 최대한 빨리 마셔야 하는 신선 식품으로 그 해의 포도 수확을 기념하는 잔치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오랫동안 보관할 수 없는 이 와인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시작된 이벤트로, 마케팅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하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파티(party)란 친목을 도모하거나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잔치나 모임을이르는 외래어이고, 잔치란 기쁜 일이 있을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을 말하는 우리말이다.
결국, 의미상으로 파티와 잔치는 같은 것이다. 하지만 잔치에는 파티에서는 찾을 수 없는 뭔지 모를 넉넉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에서 여러 차례 보졸레 누보 파티를 했었다면 올해 프랑스에서는 보졸레 누보 잔치를 경험했다.
올해 보졸레 누보 출시일인 21일 저녁에 장을 보려고 동네 근처의 큰 마트에 갔었는데 마침 그 입구에서, 사실은 알고 간 것이지만, 보졸레 누보 시음 행사를 하고 있었다. 방앗간 옆을 지나는 참새처럼 나도 모르게 소믈리에 앞에 서 있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시음을 한 후, 올해 보졸레 누보에 대해 소믈리에와 몇 마디 나누고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한 병을 집어 장바구니에 넣고는 본격적인 장을 보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보졸레 누보의 신선한 과일 향에 파리 지하철에서 자주 맡을 수 있는 뭔가 익숙한 향이 희미하게 겹쳐졌다. 거리에 있던 노숙자가 어떻게 알고 보졸레 누보를 맛 보러, 아니 마시러 온 것이다.
약간 당황한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좀전과 다름없이 행동했었다. 소믈리에는 앞에 있던 할아버지에 이어서 그 노숙자에게도 똑같이 와인을 따라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마트의 보안을 담당하는 검은 정장을 한 거구의 직원이 그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가 뭔가 험한 말과 함께 그 노숙자를 쫓아내는 장면을 떠올랐고, 순간 긴장이 흘렀다.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고,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낮게 깔렸다.
“3 잔만 드시오!.”
뭔가에 한 대 맞은 것 같았던 나는 곧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그리고 지나가던 걸인에게도 음식과 술을 주던 옛날의 동네 잔치를 떠올렸다.
오늘날 전 세계의 보졸레 누보는 와인 상업화의 상징이 되었고, 프랑스 사회 내에서도 보졸레 누보의 과도한 마케팅, 정치권과의 연관 등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와인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대함과 낭만이 흐리고 추운 이 프랑스의 겨울을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 유로저널 박 우리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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