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문제가
한국정치의
문제다.
싸움
중에
제일
힘든
싸움
중의
하나가
자신과의
싸움이다. 대부분
사람은
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두
지고
산다. 자신과
싸움을
하면서, 항상
합리화시키는
몇
가지
구실과
명목이
있다. 첫째는
싸우던
그것을
과도한
욕망
혹은
타협으로
합리
점을
찾았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이
자신과의
싸움보다도
더
어려운
싸움이
바로
사회적
관습
혹은
관행과의
싸움이다. 한
사회에
전통적으로
이어온
관습
혹은
관행은
법적
시스템으로도 강권정치나 독재적 통치로도 쉽게
바꿀
수
없는
뿌리
깊은
전통적인
것으로
대부분
이것과
정면대결하다
망가지고
만다. 안철수가
기초공천제를
폐지하겠다고
나섰을
때, 필자는
두
가지의
관점으로
보았다. 하나는
순수한
기백과
용기
있는
결단의
순수함
두
번째는
철이
없는
무모함으로
싸우는
대상이
아직
어떤
것이지
모른다는
무지함이었다.
사회적
관습
혹은
관행과의
싸움은
언제나
부작용만
낳고
사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20세기 들어와서도
그것과
싸움에서
성공한
정치가나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혹독했던
독재
정권인
히틀러의
나치정권, 스탈린의
철의
정권도
모두
실패하고
중국의 60년대 마오쩌뚱의
문화혁명만
겨우
명분을
찾았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실권하면
이것도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중국의 역사학자는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침묵하고
있다. 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의
정책도
사실은
모두
이것과
직접
간접인
대결을
벌였
으나
부작용만
낳고 실패하고
말았다.
한국내부의
대부분
문제, 성폭력, 인신매매, 공무원
부정, 정치인들의
추악한
여러
문제는
사실은
모두
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관료주의와
남성
위주의
성관행
등으로
적어도 600년 이상
묶은
아주
깊은
뿌리를
가진
관행과
관습에서
시작된다. 군대나
요즘
일부
대학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신고식은
성균관
학자로부터
시작된
관행이고
룸싸롱
문화와
전
국토의
윤락
기지화
현상은
조선의
지방
관서에서도
유지했던
관기와
기생방
문화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정치인과
관리들의
부정은
조선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하나의
관습일
뿐이다.
이
관행과
관습은
오랜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에
이젠
공무원과
관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사회에서도
뽑아낼
수
없는
한국적
전통이
되었다. 눈먼
돈이나
접대, 공돈을
받아
즐기는 관행은 일반
직장인부터
영세
상인들까지
자유로울
수도
그밖에
설
수도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이
박혀있다. 그
돌고
도는
돈에
직접
간접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자제
공천문제를
용감하게
제기하고
다시
그것
때문에
코너에
몰린
안철수를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바위를
깨려고
달걀을
들고
서있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관습
혹은
관행에
아무
방법도
없이
맞섰기
때문이다. 지자제의 후보자 공천이나
국회의원
공천은
정치인에겐
대목
같은
것으로
한몫을
보는
절호의
기회다. 공천
때가
되면
돈
보따리를
싸고
밀려든다. 그것을
바탕으로
당권
자나
지역
국회의원은
정치권력을
쥐고
줄을
세우는
힘의
원줄이다.
안철수가
참
딱하고
철이
없는
아이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
지자제
공천에
대한
찬반
여부
투표에
당원과
당직자에게
일임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목
앞에서
떡고물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그들에게
떡고물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물은
것이었다. 물론
이것이
없어야
한국
정치가
바로
선다. 후보자는
이렇게
갖다
바친 돈보따리
이상을
당선자가
되면
다시
시민의
호주머니로부터
어떻게
해서든
다시
뜯어낸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것이
그들의
돈으로
착각하고
그
돈이
다시
내
호주머니
속에서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안철수가
지자제
무공천을
제안했을
때
국민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
호주머니를
지키는
행위라는
것도
전혀
몰랐다. 그가
깨끗한
사회를
위해
정치인부터
정화를
시키겠다는
중대한
결단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의도를
물론
이해하지
못한다. 시민들도
이러한
관행에
푹
젖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언론조차도
안철수의
혁명적인
결단과
새로운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기초공천을
그가
포기하기
전에
고독한
싸움에서
그는
손을
들고
말
것이고
결국
그는
달걀을
들고
바위
앞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선
철없는
소년이
될
것이라는
글을
내
페북에
올렸었다.
이렇게
관습과
관행은
푸른
의지나
희망을
죽이고
모든
사람을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묻어버린다. 즉
별볼일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며 그것은 새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박근혜나
이명박, 문재인
정치인
등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판단력이
없는
시민들, 무지한
국민들의
문제이고
오랜
전통으로
이어진
관행과
관습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시민의식의
변화로
그
독하고
무서운
관행과
관습을
정치나
제도가
시민
스스로
깨부수고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해법은
기원전 500여년 전에
그리스
철학자에
의해
제시되었고
다시
마르크스
혁명에
대한
실천논쟁에서
레닌식의
투쟁방법에
회의를
품은
비주류파인
베른스타인
등에
의해서도
제기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시민들은
그것을
거부한
후
바로
스탈린의
독재정권의
멍에를
스스로
짊어지고
마르크스의
꿈을
환타지와
절망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개량주의나
아래로서
시작되는
변혁과
혁명이
성공한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힘이없는
들꽃같은
시민들은
오직
함께
모여
피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끈임없이
진화해야만
살아남을
수있다. 현실에
대해
외면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기본권조차도
확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전하현(미술사가, 평론가, 미디어
강사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음)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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