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어느 분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 분을 우연히 단 한 번 어느 레스토랑에서 마주치고 간단히 인사만 한 게 그 분과의 실제 만남의 전부라서 솔직히 그 분의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분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아직 연세도 그렇게 많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고,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신 것이라 충격적이기도 하고, 평소 가깝게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 분의 소식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심정을 감히 간접적으로나마 헤아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아니 솔직히 영원히 겪고 싶지 않았으면 하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반드시 겪게 될 일인데, 그것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슬픔과 절망이 느껴졌다.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영국에서 살아가는 것, 비록 그것이 나로서는 최선의 길이었고 하늘이 정해주신 운명임을 믿지만, 그럼에도 혹여나 사랑하는 부모님과 마지막 작별 인사도 못 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갑작스런 두려움도 밀려들었다.
그렇게 그 소식을 접한 다음 날, 안 그래도 부모님 생각에 간밤에 잠까지 설쳤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는데 한국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부재 중 전화가 와 있었다. 출근길 기차 안에서 미처 벨 소리를 듣지 못해 전화를 못 받고서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올 일이 없을텐데, 마침 그 전날 접했던 소식으로 마음이 온통 가족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차, 그 부재 중 전화를 발견하고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아버지와 통화해보니 정말로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간단한 수술을 받으셨다고 했다. 설마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너무나 놀랐고 이렇게 영국에서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하는 나의 불효로 인해 가슴이 미어졌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래도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가장 무서운 소식은 아니었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연치 않게 내가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중 이런 일이 생겼는데, 정작 부모님과 통화하면서는 이런 얘기들은 꺼내지도 못하고 갑작스런 소식만 주고 받은 뒤 허망하게 통화를 마쳤고, 내 가슴 속 이야기들은 그저 뜨거운 눈물로 삼켜버려야 했다.
마음이 뒤숭숭해서 점심 시간에 회사 근처 조그만 잔디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았다. 마침 찾아온 따스한 봄 햇살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하고, 잔디 공원은 그 햇살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푸른 하늘과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히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살아가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일텐데, 우리는 정작 평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성공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고, 사람과 사람 간 미움, 갈등, 오해, 질투와 같은 것들에 감정을 허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정작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서는 여정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야말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이나 아니면 심각한 병에 걸린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들 대부분은 죽음이란 아주 먼 훗날의 일 같고 왠지 나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여긴 채, 그저 눈 앞에 보여지는 것들에만 연연하면서 아둥바둥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은 꼭 노인에게만 혹은 병에 걸린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죽음이란 어차피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고 어차피 때가 되면 죽을텐데 굳이 그렇게 살아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자각함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삶은 결국 하루 하루, 매 순간 순간 죽음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가는 여정일 뿐인데,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내가 고민하는 것, 스트레스를 받는 것, 욕심을 부리는 것, 그것들이 진정 나의 죽음 앞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일까?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딱딱하게 하고,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는 것, 그것들이 진정 나의 죽음 앞에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들일까?
그저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용서하고,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죽음 앞에 가장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 아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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