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류, 중국에서 재점화, 일본에선 문제화
‘드라마 한류’는 1997년 중국에서 <사랑이 뭐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 소비자들에게 첫선을 보이면서 한국문화에 대해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왔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대구 사이버대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2000년 중반까지는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얻은 반면 <대장금>은 중국·홍콩·동남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동유럽 등 전세계로 퍼지면서 한류 붐을 글로벌 현상으로 격상시켰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류는 드라마보다는 K팝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 왔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내 반한(反韓)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DVD 시장에서의 한국 드라마 판매 비중도 6.3퍼센트에서 2013년 상반기에는 4.5퍼센트로 감소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한류 붐이 주춤하던 사이 2014년 그야말로 들불처럼 중국에서 한류 붐이 다시 일고 있다. 바로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와 현재 방영 중인 <쓰리데이즈>의 3연타 덕분에 중국에서 한국 스타와 한국문화 콘텐츠의 위상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의 정치행사인 ‘양회’에서 중국 내 서열 6위라고 알려진 왕치산 서기가 “당신네 관리들이 <별그대>를 모르다니…
한국 드라마는 중국 드라마를 한참 앞서고 있다”며 <별그대>를 극찬하기도 했다.
광속으로 빨라진 인터넷·SNS가 효자 노릇
<상속자들>과 <별에서 온 그대> 등 드라마에 의해 촉발된 중국내 신한류는 기존 <대장금>이 일으킨 한류와 달리 지난 10여 년 동안의 한류 중심였던 일본을 밀어 내고 중국으로 그 중심축이 점점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배용준으로 대표되던 한류 스타는 이제 김수현과 이민호, 박유천이라는 신세대 스타들이 여심을 빼앗으며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룬 것도 차별점이다. 이민호는 <상속자들>의 성공으로 중국 연예인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CCTV <춘완> 무대에 올랐다. 김수현은 중국 내 TV 프로그램 <최강대뇌>에 출연하면서 10억원의 출연료를 받았고 중국 광고계의 빗발치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신한류의 파급 효과는 중국 내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하이 한인타운 홍췐루(虹泉路) 거리는 평일에도 치킨과 닭강정, 뻥튀기 등을 사려는 중국인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중국의 치킨 열풍은 <별그대>의 주인공인 전지현이 “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라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별그대>에서 등장인물이 라면을 끓여먹는 장면이 방송된 직후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淘寶)’에서 농심 라면의 주간 매출이 전주보다 60퍼센트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이러한 열풍 뒤에는 10여 년 전보다 광속으로 빨라진 인터넷과 SNS의 발달이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과거 한국에서 방송된 지 한참 뒤에야 중국이나 일본에서 반응이 오던 것과 달리 요즘은 SNS로 한국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를 일본어나 중국어로 실시간 번역해서 올리는 트위터리안들이 생겨났다.
또한 현지 동영상 전문 홈페이지를 통해 드라마가 거의 실시간으로 방송되면서 중국인들도 한국인과 거의 동시에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만큼 한류의 규모와 전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2000년 중반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었을 때 일본 지상파 방송국들이 한류콘텐츠를 열심히 사 주었으나 일본이 우경화되면서 ‘한류’가 ‘혐한’으로 변하는 이때, 수십억 인구의 중국이 한류의 구심점으로 떠오르는 신한류 현상은 반갑기 그지없다.
세련된 스토리텔링 통한 한국문화 매력 계속 보여줘야
흥미롭게도 중국은 일본과 정반대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시간 방송되는 한국 드라마는 빨리 관심을 끌고 빨리 그 인기가 사라져 버린다. <상속자들> 방송 당시 중국 웨이보는 온통 이민호에 열광하는 트위터리안으로 넘쳐났지만 이제는 <별그대>의 도민준 교수에 빠져 있고, JTBC 드라마 <밀회>의 유아인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한류 열풍이 심하다 싶으면 언제든 제동을 걸 수 있는 범국가적 통제력이 있다. 과거 <대장금>이 대박이 나자 한류 드라마에 대한 수입 제한이 실시됐고, 작년에도 포맷으로 수출된 예능 <아빠, 어디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한류 예능 포맷 수입도 정부 차원에서 1년에 1편으로 제한해 버렸다.
심 교수는 이와같이 재점화된 드라마 한류 열풍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저 로맨틱 코미디나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 품격 있고 세련된 스토리텔링 위에 덧입혀진 패션·한식 등 한국문화 전반을 담은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등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사그라든 데는 드라마와 K팝 중심의 한류 열풍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TV에 식상해 버렸다는 의견이 많다. 2010년도부터 한국의 뮤지컬이 일본 내에서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와 K팝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수출하는 것이 일본 내 한류 열풍을 재점화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단지 외국의 일간 신문에 ‘김치’나 ‘불고기’에 대한 광고를 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 한국문화를 수출하는 것, 매혹적인 스토리텔링과 스타 마케팅을 통해 신한류 열풍을 국가 브랜드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제 대한민국의 또 다른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유로저널 안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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