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예배에 성공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회복되고 누리게 됩니다. 예배에 성공할 때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며 나라가 삽니다. 어떻게 예배에 성공할 수 있습니까?
첫째 예배 회복을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유대백성은 주전 586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3차에 걸쳐 포로로 잡혀갑니다. 70년 후에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로 3차에 걸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1차로 스룹바벨의 인도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고 2차에는 에스라의 인도로 귀환해서 하나님 말씀 좇아 도덕성과 신앙생활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3차에는 느헤미야의 인도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회복의 순서는 예배의 회복에서 시작하여 믿는 자다운 삶의 회복 그리고 이러한 신앙을 지키며 살도록 성벽 재건 즉 구조, 시스템의 회복이 차례로 이루어졌다. 요한 3서 2절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의 말씀은 회복의 출발이 하나님과 관계 회복 즉 예배 회복에서 시작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예배를 소홀하게 여기며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배에 최우선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는 삶을 사는 복된 사람입니다.
둘째 마음의 정성을 담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아벨은 예배에 성공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았고 가인은 실패하여 자신과 후손이 망하였습니다. 히11:4절은 그 이유를 믿음이라고 밝힙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히11:1절은 믿음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합니다.
가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아 형식적인 예배자가 되었지만 아벨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마치 보는 것처럼 면전의식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편의주의로 제사드리다가 죽은 것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에 마음에 정성없이 예배드린 것 때문입니다.(레 10:1-2)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의 정성을 담아 모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셋째,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예배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예배드린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땅, 셀 수 없는 후손, 명예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가장 소중한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드렸습니다. 다윗은 장막을 만들었고, 성전건축을 준비했습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고,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최상의 우선순위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位)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결론
예배를 소홀히 하고 열심히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결국은 얻는 것이 없는 인생이 됩니다. 예배 성공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지혜롭고 복있는 일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