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의 지침으로서 계명과 계율이 있습니다. 사람은 계명이나 계율대로 살지를 못합니다. 계명이나 계율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하지만 마음에 미움이 있어서 사랑하지 못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어떠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미움이 있는 한 조건이 되면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어난 미워하는 마음을 꾹 참고 일시적으로 미워하지 않는 척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마음에서 사랑이 우러나지는 않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탐욕과 색욕이 내 안에 뿌리내려 있으면 조건이 되면 탐욕과 색욕의 마음이 일어나고 그 마음들을 제어하지 못하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인간마음에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근원적인 욕심인 색욕, 식욕, 물욕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수행 중에 물리치고 넘어선 것이 바로 색욕, 식욕, 물욕입니다. 예수가 세상의 왕이 되게 해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것도 색욕, 식욕, 물욕을 물리친 것입니다. 세상의 왕이 되면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성현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심을 넘어선 것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심을 넘어선 경지의 사람은 계명이나 계율이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계명대로 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계명(계율)의 최후적인 모습, 계명(계율)의 근본정신은 세상섭리입니다.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세상섭리입니다. 세상천지만물만상은 섭리에 따라 나고 존재하고 소멸하며 세상섭리에 의해 완전한 조화와 균형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재하게 하고 살리는 상생(相生)의 관계에 있어 세상이 온전할 수 있습니다. 세상천지만물만상 중에 인간이 유일하게 섭리를 거스르는 역리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계명(계율)은 섭리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 때문에, 인간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명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마음을 다 없앨 수만 있다면 계명(계율)대로 살아야지 또는 계명(율)을 지켜야지 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계명(계율)대로 살 것입니다. 종국적으로는 그냥 사는 삶이 섭리대로입니다. 그냥 사는 삶이 섭리대로인 것은 섭리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계명(계율)이 필요 없습니다.
계명(계율)의 완성은 계명(계율)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계명(계율)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것은 사람이 섭리의 존재가 될 때입니다. 사람이 섭리의 존재가 되는 것은 섭리를 거스르고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인간마음을 다 없애고 인간마음을 가진 존재마저 소멸할 때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마음과 하나인 세상의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비로소 인간완성이 이루어지고 세상이 완성됩니다. 세상과 하나인 완전한 인간은 세상섭리의 존재이므로 따르고 지켜야할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세상섭리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계명(계율)의 완성은 계명(계율)이 필요 없어질 때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