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프랑스 와인 기행 24
와인의 인연(因緣) 2
지난 회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그가 추천한 곳은 남부 론 지방 최고의 산지 ‘샤토뇌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인 ‘샤토 라 네르트(Château la
Nerthe)’였고, 이 샤토의 책임자가 직접 나와 있었다. 진행요원들이 빨리 정리하라며 생산자들에게도 압박을 가하던 상황이라 다들 짐을 싸느라
어수선했지만, 그에게만은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하고는 기품있는 자세로 와인을 따라 주었다. 2013년산 샤토뇌프 뒤 파프 화이트였다. 평소 론 지방 화이트 와인을 즐기지 않는 입장이지만, 그 와인은 달랐다. 굉장한 맛이었다. 그는 다음 와인을 따르기 위해 새로 한 병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한 여성 관계자가 정중한 태도로 더 이상 새로 와인을 열 수 없다고 하자,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열려고 했던 와인을 다시 내려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더는 와인을 따라줄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대신 레드 와인을 맛보지 못했으니 집에 가서 시음해 보라며 자신의 샤토뇌프 뒤 파프 레드 한 병을 줬다. 그리고 와인에 “OFFERTE par l`exposant”이라고 적힌 쪽지를 붙여줬는데, 이는 출품자, 즉 와이너리 측에서 이 와인을 제공했다는 뜻이다. 이 쪽지 없이 와인을 가지고 나오면 출구에서 도둑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시음회 마지막에 이미 열어
놓은 와인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경우는 흔히 있지만, 아예 새 와인을 주는 경우는 굉장히
이례적이다. 게다가 샤토뇌프 뒤 파프는 프랑스인들도 쉽게 사서 마시기 힘든 꽤나
고급 와인이다. 그리고 와인을 건네주며 자신의 샤토를 직접 방문해서 더 많은 와인을
여유롭게 맛보기를 권했다
그렇게 약간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파도에 휩쓸리듯 정신없이 시음회장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튿날, 다음 주 일정표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이미 열흘 전 한 지인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아비뇽(Avignon)을 비롯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을 가기로 했는데, 아비뇽과 샤토뇌프 뒤 파프의 거리는 약 17km로 파리에서 아비뇽의 약
690km와 비교하면 정말 넘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우연치고는 꽤나 절묘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곳은 모든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싸 데뻥(ça dépend)’의 나라 프랑스이다.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음회 때 만났던 내용과
함께 ‘가능하다면 다음 주 화요일에 귀하의 아름다운 샤토를 방문하고 싶다’는 간절한 내용의 편지를 홈페이지에 나온 예약 담당자 주소로 재빨리 보냈다.
혹시나 시음회에서 만났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소심함에 선물로 준 와인 사진을 첨부해서. 어쩌면 그는 메일에 첨부된 사진을 보고 ‘피식’하고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다음날 책임자가 자신의 메일 주소로 ‘귀하의 방문을 기쁘게 기다리겠으며 정중한 안부를 전한다.’는 내용의 답장을 직접 보내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헝데부(rendez-vous)’,
즉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게 됐다.
결국, 한 시음회에서 위대한 와이너리의 뛰어난 생산자를 만나게 되었고, 결국 며칠 안에 그의 샤토에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연’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만약 그 ‘연’ 중 하나라도 어긋났었다면 결국 미팅만 했지 연인은 되지 못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연’이 있었어도 미팅에 나가지 않았다면 연인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미팅에 나갔기에, 즉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파리, 엄청난 단점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모두 뒤덮고도 남을만큼 아름다운 도시다.
프랑스 박우리나라 기자
eurojournal2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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