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해외취업 강연 차 한국을 다녀오면서 결국 내가 다시 찾게 되는 장소들은 한국에서 살았던 지난 시절 가장 많이 다녔던 곳들, 그 중에서도 종로와 신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종로,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신촌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종로를 언제 처음으로 방문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순간부터라면 중학교 1학년 시절 친구와 종로 3가의 서울극장에서 영화 ‘리쎌웨폰 3편’을 보러 갔던 날이 기억 상으로는 나의 첫 종로 방문인 것 같다.
아마 그 전까지는 주로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따라서 극장에 다니다가 이 시기부터 친구와 극장을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던 나에게 극장들이 여럿 있었던 종로는 그야말로 꿈나라 같았다.
특히, 종로 3가는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여러 개의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었던 서울극장 및 유서 깊은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이 밀집해 있어서 어떤 날은 하루에 영화 두 편도 봤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종로에 영화를 보러 가면 부모님이 단성사 옆의 유명한 물만두를 사주셨고, 나중에 친구들과 극장에 다니면서는 햄버거나 패스트푸드 치킨을 사먹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종로에는 그 당시 우리나라 최대 음반점이었던 뮤직랜드도 있었고, 거리마다 구경할 것들이 가득해서 그렇게 종로를 쏘다니다 보면 하루 종일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부터 종로를 뻔질나게 다니다 보니 대학생이 되어서 첫사랑과 연애질을 할 때도 역시나 종로로 영화를 보러 다니고 종로 거리를 수도 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멀티플렉스 극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굳이 종로에 나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늙어가는(?) 종로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종로를 찾는 발길이 뜸해진 것 같다.
그러다가 영국으로 떠나온 뒤에 한국으로 휴가를 나가서 다시 방문해본 종로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그나마 서울에서는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간직하고 있음에도 예전 종로에 비하면 조금은 변해버린 종로, 그리고 요즘 기준으로는 많이 낡아보이는 종로, 그런데 그 조금이라도 변한 모습이 너무나 서운하고, 또 그 낡은 모습이 너무나 정겨운 것은 왜일까?
아무리 최신식 건물이나 시설이 깨끗하고 화려해도, 아무리 요즘 유행하는 가게나 거리가 있더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들 속에 자리하고 있는 종로의 옛 모습이 그 무엇보다 반갑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지난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종로의 극장들 중 대다수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고, 그나마 나마있는 극장들도 지난 날의 활기는 찾아볼 수 없다. 저 유명한 피맛골 역시 지금은 지난 날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나마 서울에서는 지난 시절의 모습들을 나름대로 최대한 유지하고 있는 덕분에 어느새 종로는 노인들의 장소가 되어 버렸고, 그런 만큼 젊은이들의 발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도 광장시장이 있는 종로 5가에서 광화문까지 제법 긴 거리를 두 번이나 걸었다. 특히, 두 번 째 걸었던 날은 종로 3가에서 종로 5가까지 갔다가 다시 거슬러서 광화문까지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종로 3가의 영어학원가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두 달 가량 다녔던 영어학원, 지금도 그 곳에는 영어 회화와 토익을 수강하기 위한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그 곳에서 영어 회화를 배웠던 지난 시절, 나는 내가 이렇게 영국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더랬는데...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그 길 한 가운데서 나는 마치 넋나간 사람처럼 내가 다녔던 학원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어서 종로 2가 낙원상가도 들렀다. 중학교 3학년 겨울 생애 첫 통기타를 구입하기 위해 방문했던, 그리고 이제 이렇게 유럽에서 공연을 다니는 뮤지션이 되어 다시 찾은 낙원상가, 어린 시절에는 낙원상가에 가면 가게마다 장발에 기타를 치고 있던 아저씨들이 나름 멋져보였는데, 이제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렇게 종로 구석 구석을 걸으면서 나는 지난 시절의 나를 만나는 여행을 했다. 어린 시절 그 종로 거리를 걸으며 설레었던 순간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추억들, 그 추억을 함께 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 도대체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린 것일까?
방문할 때마다 너무나 빨리, 참 많이도 바뀌어 가는 한국, 그 와중에 비록 조금은 낡았고 조금은 지저분해 보여도 지난 날의 모습을 그나마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종로가 고맙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부디 적어도 지금의 모습 만이라도 그대로 간직해주길 간절히 바랬다.
세월이 더 많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종로 거리를 거닐면서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그래서 지난 날의 나를 다시 만나볼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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