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방문하는 한국 남성들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영국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나는 축구,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맥주. 그리고, 어쩌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이 영국의 전통 선술집 펍(Pub)이다.
나는 아쉽게도 축구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한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다양한
영국의 맥주들 및 유럽 각국의 맥주들을 마음껏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흐뭇했었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수입 맥주가 워낙 인기여서 다양한 영국, 유럽 맥주들이 한국에도 수입되고 있기에 외국
맥주를 맛본다는 게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지만, 내가 처음 영국에 왔던 시기는 그렇지 않았기에
이렇게 다양한 맥주를 말도 안 되게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처음에 몇 번 펍을 가보고 나서는 왜 굳이 비싼 돈을 내고서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즉, 슈퍼에서 사다가 먹는 가격보다
세 배 가량은 더 주면서까지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영국인들은 저녁 시간은
물론이고 점심 시간이나 대낮에도 혼자 펍에서 맥주를 먹곤 하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정말 어쩔 수 없이 펍에 가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스스로 원해서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하게도 펍에서 마시는 맥주가 더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명 똑 같은 맥주인데도 펍에서, 그것도 아주 오래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그야말로 전통 펍에서 마시는 맥주는 분명 더 맛이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맥주는 시원하고 톡 쏘는 탄산의 맛으로 먹는 것인데, 다소 미지근하고
맛과 향이 강한 영국의 에일 맥주도 언제부턴가 그 깊은 맛 때문에 찾게 되었다. 특히, 영국의 지방으로 여행을 가서 그 동네 펍을 방문하게 되면 꼭 그 지방의 정통 에일을 청해서 맛보곤 한다.
그렇게 지방의 시골 마을 같은 곳의 펍을 가보면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이 사랑방 같은 분위기다. 아마도 동네
친구들일 법한 중년의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그 지방 정통 에일 맥주를 마시면서 열심히 수다를 떤다. 그리고,
으레 그 펍에 모여있는 것을 아는 듯, 그들을 찾는 전화가 펍으로 걸려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숙박업소에서 출발했다는 영국의 선술집 펍은 확실히 그 고유의 매력이 있다. 지금은 헐리우드에서
대성공한 ‘트랜스포터’ 등의 영화로 유명한 영국 출신 액션배우 제이슨
스타뎀은 어느 인터뷰에서 비록 헐리우드에서 지내고 있지만 자신은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편하게 맥주를 마시던 영국의 펍이 너무나 그립다면서,
헐리우드에는 깔끔하고 세련된 와인바뿐이라며 불평하기도 했다.
런던 시내에도 그렇게 세련된 가게들이 있지만, 나 역시 그보다는 오래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그래서 좀 낡고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정통 펍을 참 좋아한다.
런던 시내의 펍들은 아무래도 관광객들도 많고 해서 늘 북새통이라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만이 아는 조용한 펍이 한 군데 있다.
런던 시내에 있으면서도 대로변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와서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이 펍은 마치 영국의 시대극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펍이 있는 골목과 펍의 외관도 그렇고, 펍 실내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영국의 어느 집 응접실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곳은 의외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펍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에도 조용히 대화를
나누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 펍에 데려간 사람들은 모두 이런
곳이 있었냐면서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언제 영국을 떠날 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훗날 영국을 떠나서 살게 된다면 이 펍에서 마셨던
맥주 맛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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