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화정책 공조 중단되고 각국 금리 및 통화 정책 'my way'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온 글로벌 통화완화 공조체제가 붕괴될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최근 돈줄을 죄고 있는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과 일치하는 않는 ‘통화정책 마이웨이(my way)’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들이 증가하고 있다.
미 연준이 올해 초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면서 출구전략을 시작하고 내년 이후 정책금리 인상을 통해 통화정책을 긴축기조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오히려 금리를 인하하고 있다.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2일 미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사흘간 열리는 잭슨홀 회동 연설에서 시장의 예상대로 비둘기적 신호를 내놓으며 기준금리를 조기에 인상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옐런 의장은 "실업률 하락으로 전반적인 노동시장 상황이 개선된 것처럼 과장돼 있다"며 "여러 관련 지표로 볼 때 노동시장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말하면서도 연준의 금리인상 결정은 고용이나 물가 등 추가 경기지표에 달려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옐런 의장은 "미 노동시장이 예상보다 빨리 개선되면 기준금리 인상 시점도 현재 예상보다 앞당겨지고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클레이스의 마이클 가펜 미국 경제 분석가는 "옐런의 기본적인 경기판단이 바뀌지 않았지만 연준 정책의 무게가 갈수록 금리인상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완연하다"고 말했다.
반면,주요국 중에서는 유럽과 일본이 돈을 더욱 풀고 있다. 유럽은 경기회복세가 약화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지나치게 낮아져 디플레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막대한 국가부채로 인해 재정 확대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통화 완화 정책이 아베노믹스의 근간을 이루어 있어 양적완화 지속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유럽 중앙은행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인 0.15%로 낮추었고, 은행들에 적용하는 하루짜리 초 단기 예금금리를 -1%까지 떨어뜨렸다.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남는 돈을 중앙은행에 맡기면 이자를 주기는커녕 비용을 내게 할 테니 돈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말고 어서 시중에 풀라는 의미다.
이날 회의에서 도이체방크AG의 앨런 러스킨 주요10개국(G10) 담당 통화전략가는 "미 통화정책은 내년 중 긴축으로 선회하는 반면 유럽은 오는 2017년까지도 완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과 ECB 간 기준금리 경로가 달라지는 등 통화정책의 멀티트랙 시대가 열리면 외환시장 불안정성도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 역시 2013년 이후 2년 간에 걸쳐 통화량을 2배로 늘리는 공격적 통화팽창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영국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캐나다는 금리 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도 "기존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디플레이션 극복을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며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이르기 전까지는 경기순응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최근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기위축으로 일본은행이 자산매입 규모를 더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면서 당분간 공격적인 통화부양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LG 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들어 이처럼 주요국들의 통화정책 방향이 엇갈리고 예전에 비해 ‘통화정책 동조화’가 약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가 직면한 공동의 경제적 난관이었고 어느 한 나라의 노력 만으로 극복하기에는 그 충격이 너무도 컸다. 이처럼 커다란 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여러 나라들의 일사불란한 노력이 필요했고 주요국들도 이에 공감했다. ‘글로벌 통화정책 공조’가 중시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미 연준과 같은 방향으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쳤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단락되어 가는 현 시점에서 각국의 경제 상황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영국과 같이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되고 있는 나라들도 있는 반면, 유로존과 일본처럼 여전히 불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는 등 경기 회복세의 온도 차가 국가별로 뚜렷한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비해 최근에는 각국이 자국의 경제 상황에 초점을 맞춘 통화 정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미 연준 역시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금리 결정에 공조를 이룰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최근 내놓기도 했다.
신흥국들 사이에서도 최근 통화정책의 방향은 엇갈리고 있다. 인도, 브라질, 남아공은 정책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멕시코, 칠레, 헝가리, 태국은 정책금리를 낮추고 있다.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신흥국들의 공통점은 지난해 이후 취약신흥국으로 분류되며 외국인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자국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금융불안을 겪었던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중국 역시 8월 들어 신규 대출, 제조업, 소비 등의 지표가 예상 밖으로 둔화하면서 바클레이스는 최근 인프라 건설 등 기존의 미니 부양책으로는 경기둔화를 방어하기에 역부족이라면서 "지방정부 부채 부담, 수요증가, 금융 리스크 등의 해소를 위해 중국 인민은행이 올 하반기에 금리를 두 번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신흥국들의 금리 인상의 배경에 내부적으로는 물가상승률이 높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국내 금리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억제하려는 동기가 존재함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최근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있는 나라들은 경기 회복세 부진 또는 경기 둔화 우려가 배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신흥국들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미국의 통화정책과 반대 방향의 통화정책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취약신흥국들처럼 당장 걱정해야 할 상황은 아니더라도,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여 국제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국내금리를 오랜 기간 지속할 경우 투자자금의 해외 이탈 및 이로 인한 부작용이 가시화될 위험성이 계속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국통화가 기축통화 또는 국제결제통화가 아닌 신흥국들의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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