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볼 것 없던데요!”
휴가철을 맞아 우리나라의 많은 관광객들이 유럽 여러 나라를 찾고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유럽이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일반인에게 성큼 다가왔다.
미국 관광과 유학 및 영어연수가 9.11테러로 주춤한 사이 그 공간을 비집고 호주와 카나다가 알려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영국이 학생들과 관광객들 사이에 정보가 교환되기 시작하였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영국이라는 섬나라를 알려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말한들 누가 그렇치 않다고 나설 것인가!
국내여행사의 패키지상품에 포함된 영국여행은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후 다음날, 한국과 영국과의 시간차이로 아침 2시내지는 3시에 잠이 깬 후 날 뜨기만을 기다린 몽롱한 몸을 이끌며 대영박물관과 타워브리지 및 국회의사당을 둘러본 후 그날 저녁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는 것이 대부분이고 영국에 다녀왔는데 별로 볼 것이 없었다고 말한들 누가 반론을 제기할 것인가?
하지만 도시와 함께 어울려진 학문의 도시 옥스포드 의 한가한 오후에 마가릿 대처와 토니블레어가 거닐던 뒷골목을 거닐어보고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무어의 들판에서 산업혁명의 씨앗을 제공하던 양떼들을 바라보고 그 언덕아래서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던 희스클리프와 엘리자베스를 만나보지 않고도 영국에는 별로 볼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영국의 예전통마을인 코츠월드와 멀리 세계의 불가사의인 스톤헨지는 어떤가!
빠듯한 여행스케줄과 지갑 속을 생각 치 못하고 이야기 한다고 하면 우선 영국에서 2-3일간의 시간만이라도 할애하여 봄이 어떨가 감히 권해본다.
다행히 요즈음은 젊은 사람끼리 혹은 가족끼리 자유롭게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컴브리아와 Lake Dictrict”
컴브리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기원전 4500년 전, 땅에 깊숙히 박혀있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형성된 호수와 산이 그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한다. 잉글랜드에서 가장높은 산(960미터)도 이곳에 있고 윈드미어, 그라스미어, 설미어등의 큰호수가 10여개나 되며 작은호수도 여기저기 높은 산과 함께 절경을 이룬다.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낭만주의 시가 이곳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탄생을 하였고 비트락스 포터의 토끼가 당근을 갉아먹으며 파란 힐탑으로 도망하는 곳도 이곳이다.
윈드미어호의 길이는 무려 10마일이나 되고 폭이 1마일이나 되며 깊이는 66미터가 되는 가장큰 호수이다.
이곳에서 앰블사이드 까지 운항하는 증기선을 타면 호수에서 올라오는 물안개와 산에서 미끄러저 내려오는 구름이 옷자락에 머무는데, 멀리 보이는 작고 큰 산들을 호위하는듯하여 정신을 잃고 만다.
앰블사이드를 내리면 라이달 마운드에 도달하여 숭고한 자연에 아름다운 왕관을 씌어준 워즈워드가 마지막 생애를 마감하던 라이달 마운드 하우스에 들어가 보자.
시인이 자연대신 세상사를 생각하면 창작의 불길에 불이 당겨지지 않았으리.
프랑스혁명의 숭고한 정신에 탐닉하여 젊은 시간을 자연과 함께 호흡하던 그가 보수주의적 정치사상에 물들면서 그의 시는 한떨기 이름모를 들꽃의 이슬을 노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워즈워드와 Lake Dictrict”
워즈워드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혼탁한 빨래들이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는듯 하다.
과거를 아파하고 현재에 염려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잔뜩 찌프려진 우리네 마음에 워즈워드의 한자 한자의 싯귀가 세제가 된다.
구름처럼 외로이 헤멨네
그러다가 문득 한무리 꽃을 보았네
무수한 황금빛 수선화가
호숫가 나무밑에서
미풍에 흔들리며 춤추는 것을 보았네
은하수에서 반짝이는
별들처럼 이어져
호숫가를 따라 돌며 끝없이
끝없이 피어 있었네
그라스미어 근처의 울스워터에 갔다가 피어있는 수선화를 보고 워즈워드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살살 불어주는 바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움직이는 수선화에 황금으로 장식해 주었고 끝없는 우주속의 은하수를 끌어들이면서 영원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자연과 바람,그리고 세상보다 더 넓은 우주만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그는 가난하였다. 가난했기에 아름다운 시가 나온 것은 어인 일인가?
필자는 “시는 가난한 자들에게 준 신의 축복이다” 라고 명제한 것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지위가 높고 경제적 부을 점유한 자들이 어찌 이슬에 흠뻑 젖은 아침 장미꽃과 하루를 닫고 사라지는 노을 사이로 쏟아지는 했살을 보고 행복해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으로서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돌이킬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