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와 막장드라마, 정치권은 국민을 그만 우롱해라
해마다 이맘때면 반복되는 드라마가 있다. 스토리나 갈등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슈는 다르지만 전개방식은 별반 차이가 없다. 과도한 언어 폭력이나 극단적인 행동 등 미성년자 관람금지의 장면도 자주 나온다. 출연진은 장기가 대부분이다. 4년마다 1/3 정도 교체되기는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스토리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어쩔 수 없이 본다. 욕하면서 채널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와 닮아 있다. 바로 국정감사다.
국정감사가 7일부터 막이 올랐다.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이다. 당초 여야는 한 번에 20여일간 하는 국정감사를 8월과 10월에 두 번으로 나눠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데 합의했다. 내실있는 감사를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 관련 정쟁으로 허송세월 하며 8월 국감은 막조차 올리지 못했다. 결방 결정도 시작하기 바로 전날이다. 시청자들은 물론 세트장이며 소품, 장비를 밤새워 준비한 스태프들에게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시작 전부터 욕 나오게 한 것이다.
가관은 시간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이슈를 구겨 넣겠다는 것이다. 스토리 전개나 시청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올해 국감 대상기관은 672곳이다. 역대 최대규모다. 휴일과 주말을 제외하면 마지막 날인 27일까지 실제 감사를 할 수 있는 날은 14일에 불과하다.
단순히 계산해도 14개 상임위원회가 하루에 4개꼴로 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기관당 감사시간은 길게 잡아도 4시간 남짓이다. 그런데도 기업인들을 줄줄이 소환한다고 한다. 감사의 주 대상은 정부, 공기업, 지방자치단체인 점을 감안하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해석이 나올 법도 하다. 드라마는 어떻게 되든 광고에만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진행 과정은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한 의원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20분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요점만…”, “1분만 더…” 하는 시간 쟁탈전이 벌어진다. 준비가 부실하다 보니 일부 의원은 질의서를 국어책 읽듯이 한다. 보좌관이 건내준 시나리오를 벗어나면 당황해 호통을 치면서 면피한다.
일방통행이다. 증인으로 불려온 기업인들은 하릴없이 기다리다 증언은 길면 몇 분, 때로는 한 마디도 못한 채 훈계만 듣고 나온다. ‘갑(甲)질 국감’, ‘호통국감’, ‘1분 국감’이라는 비판이 올해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올해 국감의 형식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 내용은 ‘수박 겉핥기’로 귀결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시선이 쏠려 있다. 대한민국호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 안전망의 첫 단추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는 이번 국감에 달렸다.
세월호 진상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기에 국감에서 해경 등 관계기관 사고 대처 부실과 관련 법령 미비점 등을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그래야 이달 안으로 처리할 예정인 해경 폐지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도 판단 근거를 줄 수 있다.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을 합의한 이상 그 어느 국감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사회' 건설은 이번 국감 활동이 얼마나 알차게 진행되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서민증세 논란을 빚고 있는 담뱃세·지방세 인상 등에 대해서도 국감을 통해 국민이 속시원히 실상을 알 수 있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이뿐 아니다. 공무원 연금개혁안 등 국가적 사안들과 함께 올 연말 발족하는 금융중심지 부산의 해운보증기금 조성과 고리원전 1호기 수명 재연장 등 지역 현안들도 많이 있다. 지역 정치권을 비롯, 여야는 이들 사안에 대해서도 정책 추진의 문제점을 짚어 답을 찾아내길 바란다.
저성장기조가 지속되고 대외 환경이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과 거꾸로 가는 것은 여느 해와 다르지 않다.
다만 올해는 세월호라는 큰 분수령이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힘들고 버거운 고개다. 이를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흥할 수도 쇠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골든 타임은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의 채널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