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맹호(遠山之猛虎)가 근산(近山)에 거(居)하다가 오지장인(吾之丈人)을 착거(着去)하니 유창자(有槍者)는 재여창(在與槍)하고...”
“아니, 이 밤중에 이게 무슨 소리야?”
“글쎄, 한양에서 온 강 첨지 사위 목소리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글 공부 하는 소리 같기도 한데, 왜 저렇게 소리 지르며 하지?”
“글쎄... 뭐 저러다 말겠지. 별일 있겠나?”
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글 실력이 좋지 않아 과거를 치를 형편도 못 되고, 그렇다고 재산도 없어 어렵게 살다가 장가를 들게 됐다. 중신애비 말만 믿고 결혼을 해서 처가엘 갔는데, 산 속으로 산 속으로 걸어서 몇 십 리를 가보니 화전민 마을에 집이 몇 십 채가 있었다. 거기가 처가 동네였다. 장인 장모는 그래도 한양에 살던 선비 사위가 왔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여간 반가워하질 않았다. 이 선비가 처가에 며칠 머물다 보니 무식한 처가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의 실력을 한 번 과시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오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다가 밖에 소변을 보러 나간 장인이 갑자기 비명을 질러서 문을 열고 보니, 황소만한 호랑이가 장인을 물고 도망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호랑이지만 어른을 물었으니 빨리 도망을 못 갔다. 급히 따라가면 쫓겠는데 혼자서 가기가 겁이 났다. 선비는 속히 동네 사람에게 알려서, 동네 장정들과 함께 창이나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 호랑이를 잡고 장인을 살리려 했다.
“호랑이가 나타났소. 우리 장인을 물어 갔으니 창이나 몽둥이를 가져오시오” 하고 소리쳐야 하는데, 문득 선비는 이때 자기의 글 실력을 이곳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원산지맹호(遠山之猛虎)가 오지장인(吾之丈人)을 착거(着去)하니...” 하면서 외쳤다. 하지만 아무리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쳐도 누구도 오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빈 깡통이 더 시끄럽다는 말처럼 못난 사람일수록 그런 마음이 더 강하다. 하지만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사향은 깊이 싸 두어도 그 향내가 십리까지 퍼진다. 공연히 남에게 자신을 과시하거나 허세를 부리다가 남에게 미움을 받거나 친구를 잃는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 선비가 과시의 대가로 장인을 잃은 것처럼 말이다. 연약하고 못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약하면서도 강한 척, 못났으면서도 잘난 척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