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철아, 가슴을 쳐.”
“힘을 내야 돼, 힘을.”
“잘한다, 한번 더 힘껏.”
초등학교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힘겨루기. 7-8명의 아이들이 둘러서서, 가운데서 싸우고 있는 두 아이를 응원하면서 싸움을 시키고 있다. 이윽고 한 아이가 코피를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상대가 그 코를 다시 주먹으로 때렸다. 싸움이 끝났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너무 시들하게 끝이 난 싸움에 아쉬움을 가졌다. 한 아이가 쓰러져 울고 있는 아이 곁으로 다가가서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이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넘어져 있는 아이에게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고 가슴이고 닥치는 대로 발길질을 하다가 싸움을 이긴 아이와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넘어진 아이 곁에는 어느 친구도 남지 않았다. 그는 혼자였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가 텔레비젼이나 비디오를 통해서 만화 영화를 본다. 그런데 만화영화에는 대부분 악당이 등장한다. 그래야 흥미가 있으니까... 악당이 나타나면서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항상 많은 시련을 겪게 되고, 마지막으로 통쾌하게 악당을 쳐 부수는 이야기로 대개 끝이 난다. 이때, 만화를 보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정의의 편이 되어서 분노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정의 편과 마음을 같이한다. 만화를 다 본 후 어린이들은 모두 자기가 악당을 쳐부수는 통쾌한 장면을 그리면서 정의감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학교 주변에는 그러한 영화에서 본 악당은 없다. 학교 폭력배에게는 아예 덤벼들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들에겐 자기 마음을 풀기 위해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악당이 필요하다. 두 아이가 싸우다가 한 아이가 넘어져 있으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지금까지 악당에게 쏟지 못한 감정을 그 아이에게 쏟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넘어진 아이를 발길로 차면 모두가 용기를 얻어서 마치 악당을 쳐부수는 마음을 느끼면서 발길질을 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옛날에는 두 아이가 힘겨루기를 하다가 하나가 넘어지면, 아이들이 모두 나서서 싸움을 중지시키고 승패를 가려주며 서로의 손을 잡고 악수를 시킨 뒤 사이좋게 자리를 떠나곤 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난무하는 폭력 만화나 텔레비젼으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고 있다. 천진난만한 그 얼굴, 아직 악의가 서려져 있지 않는 그 눈빛에 부모들의 따뜻한 옛날 이야기가 동심의 세계를 더욱더 밝고 포근하게 했으면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음식, 그리고 메이커 옷이나 신발로 말고, 조용한 대화나 옛 이야기로 사랑을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