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프랑스이야기

중세를 넘어서 르네쌍스로 4

by eknews posted Oct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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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넘어서 르네쌍스로 4


프로테스탄트의 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반격을 준비한다. 
물론 교회 내부에서는 지난 세기 말부터 자정 운동이 일고 교회의 관료주의나 부패에 대한 개혁을 이야기하는 성직자들이 생겨 나고 이었다. 점증하는 프로테스탄트 세력을 약화시키고 소멸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영적이고 물질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반 개혁 운동을 배가한다. 
여전히 카톨릭 교회는 예술적인 방법으로 신뢰를 화복하고자 한다. 말씀이 당긴 성경을 무지한 신교도들이 마구 인쇄해서 말씀이 휴지조각처럼 날라 다녀도 전통의 카톨릭은 감히 귀한 말씀책 성경을 무지한 신도들에게 직접 건네주기를 주저한다. 
말씀을 몰라도 성당을 화려하게 꾸미고 바티칸을 필두로 크리스챤 국가의 방방곡곡에 아름답고 거대한 교회를 건축하면 선한 신도들은 무릎 꿇게 된다고 확신한다. 
동시에 반 종교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아니면 카톨릭 내부 자정 운동의 결과로 결성된 예수회는 청빈,교육과 선교 그리고 영성 운동 그리고 절대 순종, 특별히 교황에 충성을 서약하고 우리 사회의 약자의 편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음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교육하고 선교하는 이 교회의 군대는 고위 성직자들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 5 세기 교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을 대신하였다. 
당시 사회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교회 역사의 내면에서 도도히 흘러야 하는 영성의 측면에서 보면 성공적인 공동체로 기록된다. 일부 제후 들을 다시 카톨릭으로 돌려 세우기도 하였다. 

몽떼뉴
몽떼뉴(1533-1592)는 종교전쟁의 절정기에 저술 활동을 했다. 그의 『수상록』은 두 가지 주제를 다뤘다. 
그 하나는 회의주의다. 몽떼뉴는 인간의 능력이란 극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진리와 오류를 측정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에세이 『식인종에 관하여』에서 주장한 대로, 한 나라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진실되고 완전해 보이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온전히 그릇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몽떼뉴의 두 번째 주요 원리, 즉 관용의 필요성이 뒤따른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완벽한 종교와 완벽한 정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완벽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몽떼뉴는 어떤 종교나 정부도 완전하지 않으며, 따라서 죽음을 담보로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믿음이란 없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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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2년부터 1588년까지 
8차 종교 전쟁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1572년)이 있었다. 왕실 실권자였던 대왕 대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신•구교 화합의 상징으로 신교도의 우두머리인 나바르의 앙리(앙리 4세)와 자기 딸 마르그리트 공주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메디시스는 수많은 신교도가 결혼식 하객으로 파리를 방문하자 성문을 닫아건 채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신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케 했다.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여왕 마고’의 배경이 된 이 사건으로 빠리에서만 하룻밤 사이에 약 3000명의 신교도가 죽었다.
1589년 앙리3세(1551-1589)가 클레망이라는 신부에게 암살당하자 유언으로 사촌 앙리4세(1553-1610)에게 왕위를 넘기도록 한다. 카톨릭 신성동맹은 스페인 왕을 등에 업고 자국의 왕을 핍박하여 기즈공을 은밀히 신왕으로 내정하였다. 
프랑스에는 당시 두 개의 카톨릭과 하나의 프로테스탄트가 있었다. 1594년에서 파리에 입성한 왕은 1598년 관용과 화합의 정신에 입각하여 낭트 칙령을 선포하여 신교도들도 이미 예배를 보고 있던 도시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 

흐네데까르트
(Rene Decartes1596-1650)

종교 전쟁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며 근대로 넘어 가는 길목에서 데까르트가 드디어 왔다. 그는 새로운 철학을 시작한다. 그의 어록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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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나"가 사화나 교회나 왕실이 아닌 "나"가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 교회가 왕실이 명령하는 대로 받아 적고 살던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의 부각은 가히 문명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변환점이다. 
사회나 교회나 불특적 다수인 민중이나 시민도 아닌 "나"의 존재감은 사회를 크게 변화시켜 줄 것이다.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나"가 부각되어 올라오는 거대한 움직임이다. 
"나"는 "생각한다"는 것은 회의론의 시작이다. 생각한다는 말은 의심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기존의 사회가 주었던 모든 기정 사실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가정에서 준 교육이나 학교가 준 지식이나 교회가 준 진리에 대하여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의심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와 질 것이다. 상식이 회복될 것이다. 

절대 왕정과 
시민 혁명을 준비하는 시대

17세기 1618-1648년의 30년 전쟁은 신교와 구교의 세계대전으로 독일은 인구의 3분의1이 사망.
30년 전쟁이 끝난 뒤에야 유럽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을 마무리 짓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서 비로소 개인의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었고, 깔뱅 파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마틴 루터 신부가 95개조 반박문을 썼던 시기에서 100년이 더 지난 뒤였다. 하지만 1685년 루이14세 왕은 할아버지 앙리4세의 낭트칙령을 번복하고 왕이 따르는 카톨릭 만을 국교로 인정하여 박해 받은 수 많은 위그노 신교도들은 조국을 등지고 홀랜드나 스위스로 망명길에 올라 그 곳의 중 상공업 부흥에 일조하게 된다. 
임재와 부재간에 흐르는 영성을 찾아서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널려 있었다. 18세기 초 루이 14세(1638-1715) 시대가 가고 루이 15세(1710-1774)가 왕위에 오른 시대는 인문주의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여성들도 저택의 사롱을 개방하여 자유 분방한 분위기가 억압된 분위기를 몰아 낸다. 
문학살롱 철학살롱이 생겨나고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활개를 치고 신흥 중 상공업자나 금융업자를 중심으로하는 부르쥬와 계급이 생겨난다. 이들은 축적된 부로서 귀족의 지위를 사서 귀족의 복장을 하고 다닌다. 귀족의 옷이라고 해봐야 짧은 바지의 뀔로뜨에 불과한 것이다.    
유명한 귀부인들의 살롱에서 볼떼르(1694-1778), 몽떼스키외(1689-1755) 장자크 룻소(1712-1778)등이 활동을 하였고 계몽주의 사상에 전도된 백과전서파들이 설치고 있었다. 세상의 지식을 책으로 묶어 보급되자 모든 사람들이 계몽되고 자각하는 시대가 열려 새로운 혁명이 예고되었다.  
 


사계절 옥탑방에서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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