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리 파도 금 부스러기도 나오지 않는거지?” “글쎄... 그래도 좀더 파보자고. 틀림없이 이곳에 금이 있을 거야!” “그래? 이...

by 유로저널  /  on Oct 24, 200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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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리 파도 금 부스러기도 나오지 않는거지?”
“글쎄... 그래도 좀더 파보자고. 틀림없이 이곳에 금이 있을 거야!”
“그래? 이제 너무 지쳤는데... 좋아... 조금만 더 파보자.”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엘도라도(황금이 있다는 이상의 도시)를 꿈꾸며 금광을 찾으러 나섰다. 그들은 나름대로 세밀하게 조사해서 금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을 때 땅을 파 들어갔다. 그렇게 조사하고 땅을 팠지만 실제로 금광을 발견한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금을 찾는다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금이 없다는 사실이 확증되었는데도 자기 생각 속에서 금이 있다고 믿고 땅을 판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파면 팔수록 고통만 더할 것이다.

때때로 우리 교회에 나오는 분들 중에 종종 그 마음이 침륜에 빠지는 것을 본다. 약하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에게 약함이 많아서가 아니라 본디 약한 자신에게서 잘할 조건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금이 없는 땅을 파서 금을 얻으려고 하듯 자신에게서 여러 가지 조건들을 찾아다닌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모를까?

사람이 마음이 교만해지면, 자기를 크게 보아 자꾸 자기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성경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도 그랬다. 탕자는 자기를 크게 보아 아버지를 떠나 자기 길을 갔다. 그 결국은 주려 죽는 위치였는데, 그것이 탕자의 본 모습이었다. 주려 죽을 지경에 처한 탕자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죽음의 문 앞에 선, 자기 힘이 다 빠진 바로 그 때, 탕자에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께로 돌아갈 힘이 생긴 것이다.

주려 죽어가는 사람이 어찌 먼 나라에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것이 끝날 때 새로운 힘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온 인류의 스승이요 구세주로 불리우는 예수 그리스도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죽음이란, ‘내가 내 안에서 가능성을 찾는 일이 완전히 끝난 상태, 내가 내 생명을 지킬 수 없는 상태, 내가 나에게 더 이상 소망이 될 수 없는 상태’이다. 우리의 마음은 형편적으로 가능성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는 인간의 것이 끝난 그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다.  

오늘 하루도 자신에게서 어떤 좋은 조건을 찾으며 산다면, 우리는 금 없는 광산에서 금을 얻으려고 열심히 땅을 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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