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하면 오늘 읽은 창세기 2장 4절에서 6절까지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

by 한인신문  /  on May 25, 200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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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하면

오늘 읽은 창세기 2장 4절에서 6절까지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게만 보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채소도 없었고 밭에 경작할 사람도 없고 비도 내리지 않았고…. 그 자체만 보면 진짜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나님께서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물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어지라 하시매 나뉘어졌고, 말씀대로 바다가 생기고 육지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땅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하나님이 물고기를 만드시고 공중에 새를 만드시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사람도 만드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게 하나님에게 뭐가 문제가 됩니까?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운 누더기를 입은 탕자를 보면 너무 절망적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 잡으라.”고 하며 일하기 시작하니까 탕자의 절망적인 상태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아무것도 안 될 것처럼 보이는 그 땅에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시니까 너무너무 놀랍고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내가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봐야지. 율법을 지켜봐야지.’ 여러분, 그런 각오를 얼마나 많이 해봤습니까?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용서해달라고 빌고 앞으로 죄 짓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이 각오하고 결심했습니까? 저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해봤습니다. ‘이번 부흥회부터는 진짜 회개하고 바르게 살아야지. 새해부터는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내가 오늘부터는….’ 그건 마치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의 땅이 내가 나무를 만들어봐야지, 꽃을 피워봐야지, 빛을 내봐야지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로써는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하나님이 풀을 만드시고 꽃을 만드시니까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이 다 담당하셔서

천지를 창조한 과정은 우리 마음이 변하는 과정과 너무 같습니다. 어둠 속의 땅이 변한다는 건 불가능해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일하신다면 뭐가 불가능하겠습니까? 다 가능합니다. 내 마음이 그렇습니다.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해도 선이 없고,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지킬 능력이 없고, 내가 정말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도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으로는 전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일을 하시면 다 됩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의를 만들려고, 선을 만들려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열매를 맺으려고 수도 없이 노력하고 애쓰고 했습니다. 내가 거룩해져보려고, 내가 진실해져보려고 수도 없이 애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되지를 않았습니다. 창세 이후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수천 년 동안 인간들 속에 어느 누구도 선을 만들지 못하고 의를 만들지 못하고 거룩함을 만들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일하실 때가 온 겁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죄를 손끝만한 것 하나 남김없이 하나님은 다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인간들 속의 죄를 다 끌어가시니까 인간의 죄가 없어졌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했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우리가 보기에 어떻든지 다 예수님께로 넘겨버렸습니다. 전부 다 예수님께로 다 넘겨버렸습니다. 내 마음 속에 내가 죄를 범한 기억은 있지만, 그건 내 기억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내 죄가 다 예수님께로 넘어가고 다 예수님께서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가져가시고 그 대신에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우리에게 다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

히브리서 10장에는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7)라고 되었고, 고린도전서 6장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라고 되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볼 때 아직 병이 안 나은 것 같고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예수님 말씀의 능력이 이미 병자를 온전하게 한 것처럼, 내가 볼 때 내가 추하고 더럽고 악한 죄인처럼 보이지만 이미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깨끗함과 하나님의 의가 내게 왔다는 것입니다. 그건 내 느낌으로는 확인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히 10:1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롬 8:1)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느끼지는 못해도 이미 우리는 거룩하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왜? 죄를 안 지어서가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의롭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눈과 느낌으로 확인이 안 될 따름 입니다.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의 경험, 자기의 판단을 믿기 때문에 자기가 죄인인 것 같을 때는 죄인이라고 그럽니다. 자기가 약한 것 같을 때는 약하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잘난 줄 알 때는 잘 났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판단을 따라 살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 판단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내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의로운 걸로 믿고,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불가능한 모든 일을 이루시는 걸 믿는 믿음으로 의 위에 서고 거룩함 위에 서는 겁니다.
여러분, 나 자신을 보면 내가 의롭다고, 거룩하다고 못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처럼 추한 인간을 거룩케 한 사실이 믿어지면서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 안에 거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박옥수 목사의 조직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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