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8)

by eunews posted May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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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8)
     지난 호에서는 터키의 유럽연합 (EU) 가입이 가져올 문제점을 분석했다. 이번에는 지난 5월과 6월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이 거부한 유럽헌법의 미래를 진단해 보자.

    <유럽헌법안 일지>
2001.12.14∼15: 벨기에 라켄(Laeken)에서 열린 EU정상회담에서 EU는 ‘시민에게 친근한 EU’ ‘중•동부 유럽국가의 회원가입 이후 EU의 효과적 운영’ ‘신세계 질서에서 EU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한 유럽미래회의(Convention on the future of Europe) 구성에 합의함. 유럽미래회의는 중•동부 8개국과 키프로스, 몰타 대표와 기존 15개 회원국 대표, EU집행위원회, 유럽의회 대표 등 모두 105명이 참여. 전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의장을 맡음.
2003.6.13: 그리스 데살로니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유럽헌법 초안을 제출. 이어 각국 대표들이 헌법초안을 놓고 협상을 벌임.
2003.12: 폴란드, 스페인의 가중다수결 삭감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함.
2004.6.17∼18: 30여시간에 이르는 협상 끝에 EU 헌법안에 합의. 2006년 말까지 25개 회원국에서 의회비준 혹은 국민투표로 통과시킨다는 계획.
2005년 5월/6월: 프랑스, 네덜란드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을 각각 거부
2005년 6월: 브뤼셀 유럽연합 정상회담: 유럽헌법 관련 ‘숙고할 시간을 갖자’로 결론을 내림.


        대규모 회의끝에 나온 헌법안 쓰레기통으로?
     유럽통합사에서 각 국 회원국 대표와 유럽연합 주요기구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 논의, 헌법안을 제출한 것은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그만큼 유럽헌법안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이 이를 거부, 현재 형태의 헌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렵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의 과반수가 헌법안을 반대하는데, 시간이 지난다고 찬성하는 쪽으로 여론이 바뀌기가 쉽지 않다. 유럽헌법은 25개 회원국에서 의회비준 혹은 의회비준과 국민투표에서 통과가 돼야 실행이 된다. 2개 회원국에서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행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회원국들이 다시 협상을 시작,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것도 어렵다. 그동안 헌법안 제정과정에서 보듯이 각 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수많은 진통을 겪었다. 그런데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은 실익도 없을 뿐더러 통과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럽헌법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가? 헌법의 주요내용은 무엇인가? 이전의 조약과 비교, 차이점이 무엇인가?

                        조약과 헌법
     유럽연합은 각 종 조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1952년 설립된 석탄철강공동체는 파리조약을 체결했다. 또 1957년의 경제공동체는 로마조약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조약을 체결한 각 회원국은 이를 준수한다. 다른 국제조약과 다르게, 유럽연합의 조약은 회원국의 국내법보다 우선하며 직접 효력을 갖는다. 즉 회원국 국민은 자국이 유럽연합 조약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국민이 직접 유럽법원에 제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내 법원에 제소하면, 회원국 법원이 조약과 관련된 조문의 해석을 유럽법원에 의뢰한다).
     그러나 이런 조약은 너무나 방대하고 각 종 법률용어로 가득차 있어 일반시민이 유럽연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돼 왔다. 따라서 중.동부 유럽 등 10개국의 가입을 앞두고 시민에게 친근한 유럽을 만들기 위해 헌법안이 논의돼 왔다. 정식명칭은 ‘헌법조약’ (Constitutional Treaty, 이하 헌법안)이다. 또 하나의 조약과 비슷한데 한 나라의 헌법과 유사하게, 입법.사법.행정부 역할을 하는 유럽연합 기구가 무엇이고 유럽연합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쉽게 풀어썼다. 각 조약에 흩어져있던 관련 조항을 모았으며 이러는 과정에서 유럽연합 기구의 의사결정방식도 일부 변경했다.
     헌법안 협상과정에서 각 회원국의 입장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국가주권을 중시하는 영국의 경우, 조세율과 재정정책, 공동외교안보정책은 결코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된다며 ‘레드라인’을 제시, 관철시켰다. 독일 등 일부 국가는 이런 분야에서 약간의 진전을 희망했다.
    
            유럽연합 대통령과 외무장관
     헌법안에서 신설된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유럽연합 대통령과 외무장관이다.
1) 2년6개월 임기의 EU 대통령
     우선 EU 대통령을 살펴보자. EU정상회담은 각 회원국 정부와 국가수반이 모여 주요 정책의 지침과 방향을 결정하는 기구다. 보통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이제까지 EU정상회담의 의장과 각료이사회(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기구) 의장은 회원국이 6개월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맡았다. 영국은 올 하반기 순회의장국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고 국제무대에서 EU 대표가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또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이 의장을 맡았을 때와 그밖의 나라에서 의장을 맡았을 때 업무추진능력에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헌법안은 EU정상회담의 상임의장을 임명할 것을 규정했다. 정식명칭으로 유럽정상회담의 상임의장이지만 통칭 EU 대통령으로 불린다. 각 회원국 수반들이 선출하는 상임의장은 임기 2년6개월에 연임이 가능하다. EU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주재하고 준비하며 공동외교안보정책(CFSP•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에 있어 EU의 입장을 대변한다. 한 인물이 최소한 2년6개월 동안 EU를 대표하므로 EU의 대표성과 정체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됐다.

2) EU 외무장관
     EU 외무장관은 EU의 개발원조 업무와 공동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게 된다. 행정부 역할을 하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대외담당위원과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분담해온 업무를 한 사람이 담당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외교분야에서 EU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될 수 있다. 또 외무장관은 각 회원국 외무장관 모임인 각료이사회를 주재하고 공동외교안보정책을 집행하게 된다.
     이제까지 EU의 외교는 EU집행위원회 대외담당 집행위원이 대외원조를 맡고, 그밖의 주요 국제문제는 공동외교안보담당 고위대표(통칭 Mr. Europe, 현재 하비에르 솔라나)가 맡았다. 경제와 통상은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으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아 행사해왔다. 즉 EU 예산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정책은 집행위원회 대외담당 집행위원이 관장했던 것. 단 공동외교안보정책 결정에선 각 회원국이 독자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인정해왔다. 이러다 보니 개발원조와 공동외교안보정책의 일관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를 지원하는 데 있어 공동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선(先)인권개선을 요구한 반면 대외담당 집행위원은 선(先)인도적 지원을 강조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헌법안은 대신 외교정책의 주요 도구인 예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EU 외무장관이 개발원조와 공동외교안보정책을 함께 관장하도록 했다. 개발원조 업무가 집행위원회 고유 권한인 만큼 EU 외무장관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역할도 겸임하도록 규정했다. 이 업무를 수행할 때는 집행위원회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
     현재 EU는 전세계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워싱턴 주재 EU대표부를 중국, 러시아대사관과 마찬가지로 1급 외교공관으로 분류하고 있다. EU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초대 EU 외무장관은 각 국에 나가 있는 EU대표부도 지휘하게 될 예정이었다.

               헌법안 부결이후 기존의 틀안에서 협력강화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정치학과에서 유럽통합을 가르치는 제프리 에드워즈 교수는 EU 헌법안이 부결되자 이렇게 전망했다.
     “현재의 헌법안을 수정해 국민투표에 회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헌법안에 담긴 내용 가운데 회원국들이 실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살려 운영할 것이다. EU는 수많은 조약에 근거해 운영된다. 따라서 이번 헌법안이 거부됐다고 EU 운영이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헌법안에 새로 규정된 정책이 실천되지 못할 뿐이다.”
     실제로 EU 외무장관 신설문제의 경우, 회원국이 각료이사회 등 기존의 기구를 통해 충분히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다. 나토(NATO)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하비에르 솔라나가 현재 EU의 공동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각 회원국도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인 EU가 국제무대에서 경제력에 맞는 정치력을 행사하려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솔라나가 꾸리고 있는 사무실에 각 회원국이 필요에 따라 외교관을 파견, 각국의 외교정책과 EU의 외교정책을 좀더 긴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비록 EU 외무장관이라는 칭호는 없겠지만, 이런 일은 회원국 사이에 합의만 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현재 EU 집행위원회가 세계 각국에 파견하는 대표부를 통합해 운영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헌법안이 부결됐더라도 기존의 각료이사회에서 합의되면 시행이 가능하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의 거부로 헌법안은 사장됐다. 그러나
이 헌법안은 통합사에서 하나의 획을 가르는 문서로 남아 있다. 유럽연합은
실용적인 방향에서 더욱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 호에서는 영국과 유럽통합에 대해 알아보자.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유럽통합전공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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