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3)

by eunews posted May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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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미국간의 ‘특별한 관계’가 뭐길래?
     지난 호에서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유럽통합정책을 분석했다. 유럽과 미국의 갈림길에서 토니 블레어는 결국 전통적인 영국의 외교정책에 따라 미국을 선택했다. 과연 ‘특별한 관계’가 무엇인가?

     최근 일간지 가디언에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워싱턴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메어어경의 회고록 <워싱턴 DC 3급비밀> (DC Confidential)이 연재돼, 파문을 일으켰다. 영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결정과정에서 미국과의 논의 등 상당수의 비밀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분노한 잭스토로 외무장관은 전직 고위외교관이 비밀을 누설하면 장관이 이들을 신뢰할 수 없다며 메이어경이 맡고 있는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직을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메이어 경을 이를 맞받아치며 자신의 회고록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가 모시던 여러 상관에 대한 솔직한 평가이외에 이 책이 규명한 것은 토니 블레어가 미국의 힘에 매료돼 국제법을 위반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즉 미국은 이라크 침략에 영국의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다. 따라서 토니 블레어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을 압박, 제2의 유엔결의를 얻도록 해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토니 블레어는 초강대국 미국의 힘에 현혹되고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가 영국의 국익이라 여겨 결국 이런 지렛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라크를 침략, 영국을 테러의 위험에 더 노출시켰다는 것이 전직 외교관의 주장이다.

                 특별한 관계가 뭐길래?
     파격적인 주장이외에 특별한 관계가 관심을 끄는 것은 유럽통합정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일부 지도층은 특별한 관계와 영국의 유럽통합간에 배타적인 관계가 있다고 여겨왔다.  즉 특별한 관계때문에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비례하지 않게 더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블록인 유럽공동체/유럽연합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설사 가입하더라도 미국과 유럽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 양자가 갈등을 겪고 있을 때에는 미국을 선택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미국과 영국간의 특별한 관계를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처칠과 루스벨트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발생한지 2주 후, 1941년 12월 말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톤 처칠은 미국을 방문했다. 3주간 주로 백악관에서 머물며 처칠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두 나라간의 협력관계를 집중 논의했다. 언젠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휠체어를 밀고 처칠이 머물고 있는 방에 들어갔더니 때마침 처칠이 목욕을 마치고 벌거벗은 채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당황한 루스벨트는 곧바로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 그 때 처칠이 "영국의 총리는 미국 대통령에게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소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처칠은 이 일화를 부인했지만 이 이야기는 두 나라간의 특별한 관계가 무엇인지, 그 일단을 보여준다. 실제로 특별한 관계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도 처칠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영국간의 특별한 관계가 무엇인가? 실체가 있는가 아니면 쇠퇴하는 국가-영국-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허구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두 나라간의 특별한 관계는 존속해 왔으며 국제체제의 변화속에서 이를 살펴봐야 한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와 비교, 영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특별하지만 그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2차대전 이후의 특별한 관계

     우선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를 보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 영국의 청교도가 미국으로 이주하고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영국의 식민지이었으며 이후에도 계속 문화와 역사를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는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연방에 속하는 여러 나라가 있지만 영국만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의 하나이다 (P-5).
     국제체제의 변화속에서 두 나라가의 관계는 2차대전 이후부터 시작된다. 2차대전이 종결된 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형성되면서 미국은 전세계에서 소련의 팽창하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전성기 때 세계의 1/3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영국은 싱가폴이나 홍콩,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 기지가 있었고 여기에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또 신생독립국가의 지식인가운데 상당수가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신생국가의 군부나 정보당국도 영국군 그리고 영국 정보당국과도 교류를 하고 있어 미국은 영국의 이런 인적네트워크와 군대, 기지가 매우 필요했다. 1947년과 1948년 영국과 미국은 영-미협정 (UKUSA Agreements)을 통해 전세계에서 신호정보 (signal intelligence)를 나눠 수집하고 정보를 공유한다고 명문화했다. 또 1962년 미국이 영국에 폴라리스 핵미사일을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하고 핵연료와 정보도 영국과 일정부분을 공유한다.
     두 나라 국민간의 밀접한 교류도 계속되고 있다. 두 나라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고 미국의 지식인들이 영국의 케임브리지나 옥스포드대학교 등에서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흔하며 영국 학생들도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또 각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간의 자매결연도 많아 두 나라 각계각층이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영국의 관가인 화이트홀 (Whitehall)과 워싱턴의 관료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거의 습관적으로 비공식으로 논의한다. 1993-2001까지 미국의 42대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1969-70년 옥스포드대학교에서 로즈 장학생 (Rhodes Scholar, 로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을 개발, 갑부가 된 영국인)으로 영국에서 공부했다.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보수당의 해롤드 맥밀런 총리는 영국을 그리스, 미국을 로마로 비유했다. 식민지를 오랫동안 운영한 경험이 많고 노련한 외교경험이 있는 영국이 국제무대에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 즉 로마처럼 거칠게 행동하는 미국을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였다. 맥릴런 총리는 이차대전 때 아이젠하워 장군의 절친한 친구였고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이 됐을 때 이 관계를 십분 활용,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 1961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젊은 케네디와도 친분을 계속 유지했다. 1979-1990까지 총리를 역임한 마가렛 대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이데올로기 동지' (ideological soulmate)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소련에 대항하는 힘의 정책을 역설했다. 1986년 4월 미국이 가다피 리비아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리비아를 공습했을 때에도 미국을 적극 지지했다. 1982년 4월부터 6월까지 영국이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벌일 때에도 미국이 제공한 병참과 정보가 영국 승리에 중요한 요소였다. 영국 본토에서 남미에 있는 포클랜드까지는 8천마일, 약 1만3천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다. 본토와 엄청난 거리에 따른 병참의 문제점과 아르헨티나 군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확보가 이 전쟁의 관건이었다. 영국은 항공모함과 구축함 등을 주력으로 전투에 나섰다. 영국 항공모함 1척이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침되었다. 이 때 미국은 4월말까지 공식적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영국과 아르헨티나를 중재하려고 하면서도 영국에게 스팅거 미사일과 공대공미사일을 공급했다. 또 아르헨티나 공군과 해군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 영국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미국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방국에 이 정도의 정보와 병참제공을 한 예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없을 것이라고 당시 관련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관계'도 미국의 패권이 확립되고 전세계에 미국의 힘이 미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약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또 영국은 특정사안에 대한 상시 협의 등을  조약으로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런 배타적인 관계가 미국외교정책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두려워 명문화를 거부했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간의 ‘특별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특정한 외교정책을 실시할 때 입안과정에서부터 영국의 의견을 청취한다. 물론 영국의 의견이 미국의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고 실천되느냐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지만 영국이외에 그 어느 나라도 이런 과정에 영국만큼 밀접하게 참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계'이다. 또 영국이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고 국제사회에서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당연히 여겨진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특별한 관계'가 존재함을 입증한다. 런던주재 미국의 중앙정보국 주재관은 영국의 합동정보위원회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 정보를 얻는다. 과연 영국이 미국이외에 이처럼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나라는 더 있을까?
     미국의 독주에 대해 항상 습관적으로 ‘노'라고 말하는 프랑스나 40여년간의 분단을 겪으면서 미국에 상당부분 안보를 의존해왔던 독일, 따라서 미국의 요구나 압력에 대해 취약할 수 밖에 없었던 독일이다. 이들 두 나라와 미국의 관계와 미국, 영국간의 관계를 비교해보면 미국과 영국간의 ‘특별한 관계'가 쉽사리 이해가 간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이를 '특별한 관계'라기보다 영국은 미국의 `주구'니, 미국의 ‘가신'이니 하는 식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영국 언론도 블레어 총리가 부시 대통령을 너무나 적극 지지하다 보니 ‘블레어가 부시의 삽살개 (poodle)이냐'고 자주 비꼰다.
     영국 외무부에 파견돼 영미 관계를 지켜본 독일의 한 외교관은 "미국과 영국간의 관계가 외부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는 말을 했다. 또 국제연합 (UN)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한국의 한  외교관은 "영미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표현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는 냉전체제의 붕괴이후 그 세력이 많이 쇠퇴하고 있다. 중국만이 점차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껄끄러운 문제의 경우 안보리에서 영국이 발의하도록 하는 등 영국에게 주도권을 양보하는 척을 자주 한다. 물론 사전에 밀접한 조율을 통해 미국과 영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냉전붕괴이후의 ‘특별한 관계’
     그렇다면 냉전이 붕괴된 1990년 이후에도 ‘특별한 관계'는 계속되고 있는가?
      90년대 초기 한 정치학자는 냉전붕괴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신세계질서 (New World Order)속에서 영국의 역할은 미비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지만 제국이 너무 비대하고 군사력에 과도한 예산을 쓰기 때문에 (imperial overstretch) 점차 쇠퇴할 것이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역사학자 폴 케네디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또 경제문제가 주요 의제로 등장하고 있는데 미국은 국제경제체제를 이끌어 가는데 영국보다 독일이나 일본과 더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2005년이 되면 미국민의 1/3이 백인이 아닐 것이라는 인종구성의 변화와 대서양 지역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는 미국내 지역간 역학관계의 변화도 두 나라간의 특별한 관계가 쇠퇴하리라고 보는 이유이다. 즉 대서양 지역은 전통적인 앵글로 색슨 엘리트가 많은 지역이었고 이들은 영국과 역사적, 문화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시아 인종 등 다민족 사회가 많은 캘리포니아 등 태평양 지역의 엘리트는 그렇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이 독일과 일본을 신국제질서 형성에 적극 관여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미국은 1970년대 데탕트를 조성하는데 소련과 중국을 대상으로 이른바 ‘3각외교' (triangular diplomacy)를 전개했다. 이제 냉전붕괴이후 독일과 일본을 포함, 이른바 ‘빅쓰리'가 국제질서 형성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2년 미국 국무부는 미국의 동맹국 우선순위를 메겼는데 1위가 독일이었고 영국은 5위를 차지했다. 통일이후 독일은 유럽에서 제일의 경제대국이고 유럽통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미국이 독일의 가장 우선시해야할 동맹국으로 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보듯이 위기때마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했다. 의료보험과 교육에 투자할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왜 이라크를 침략, 엄청난 돈을 쓰는 것이 영국의 국익인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영국 지도층에게 국가위신과 무력의 사용은 경제문제와 분리된, 즉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국내정책에서 다소 차질이 있다해도 국가위신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국익인지 혹은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한 사익인지는 역사가 판달할 일이다.
     따라서 아무리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영국 지도층의 이런 시각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다음 호에서는 미국과 유럽연합 (EU)과의 관계를 분석해보자.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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